9월 29일 이후로 나는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마음이 도통 집중이 되지 않고, 생각이 어둡다. 착 가라앉아서 계속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사람의 본성에 대해 얘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나는 선과 악으로 나누기보다 이중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만 또라이인게 아니라, 내가 또라이라는걸 알아야 사회가 제정신이 될것 같다. 너무 막말 같나? 그런데 진심이다.
직장생활을 해보니 완전한 선인도 완전한 악인도 없다. 단지 내 밥그릇을 잘 챙기냐 못 챙기냐만 있을 뿐. 그리고 공직의 폐해가 아랫사람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잘 바뀌지 않는다는걸 실감하고, 왜 직장인들이 무기력해지는지를 깨달을 뿐이었다. 더 무서운 사실은 내가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조직문화에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계속 고민한다. 누가 옳고 그르냐. 무슨 기준을 세워 일을 해야하나. 머리가 아팠다. 감정을 1도 섞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지만 섞이고, 사람을 나의 프레임 안에 가두어 평가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평가해버렸다. 각자의 기준에 맞추어 옳다 여기는것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니 조직이 한마음으로 움직이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불가능했다.
조직이 나에게 맞춰주지 않고, 사람들의 배려도 나름 한계가 있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늘 긴장되는 이유는 무슨 안건이건 간에 결국 그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인듯하다. 모든 것이 능력으로 평가되는 현실 직장에서는 매번 머리를 굴리느라 피곤하다. 말도 생각하게 되고, 업무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면 피곤해진다.
모든 직장인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할거라고 생각된다. 관계가 친밀해지는게 과연 좋은걸까? 친밀하면 사적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고,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남에게 그런 말들이 흘러가기 쉽다. 나는 이러한 부분이 업무에도 충분히 지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 나의 실력만 잘 쌓으면 되는걸까?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 인격까지 함께 겸비한 경우를 정말 못봤다. 이런 사람들은 협업도 어렵고 공감도 잘안되고 타인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뭐하나 부족함이 없으면 좋으련만. 그러기 쉽지 않다.
계약기간이 11월까지이다. 우리 박물관 업무가 많다고 행정팀을 새로 꾸린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장된 미래가 없는 나는 벌써 다른 기관의 채용공고들을 훑어보고 서류에서 탈락했다. 자신감이 급하락한다. 자신감은 처음부터 없었고, 단지 현실을 마주할 뿐이다. 괴로운 현실을 마주하고 좋은 날이 갔구나 하며 생각중이다.
직장이 있다고 해서 안정감이란 없을것 같다. 박물관의 모든 직원들도 괴로워하며 직장생활을 하는 걸 보니 그렇다. 현실은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직에 있으면 그래도 낫지 않냐는 그저 포장된 위로일뿐. 월급쟁이 공직이 억울해서 내 밥그릇 챙기느라 더 무기력해지고 화합은 안되고 뭔가 일이 산으로 간다. 박물관의 깊이 있는 전시는 이 모든 현실을 뚫고 나오는 위대한 산물이다.
대한민국 현실이 한숨이 나오는것처럼 직장도 그렇다. 그래서 내가 할수있는게 뭔가. 그냥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묵묵히 하는것밖에 없다. 욕을 쳐먹고 싶지 않아도 쳐먹는 위치가 되었다면 쳐먹어야 한다. 그리고 전혀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 한솥밥을 결국 같이 먹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