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좋아하는 마음(2022.10.6)

직장동료를 대할 때 나의 태도

by 소국

사람에게 씌워지는 프레임은 정말 무섭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나의 어떤 접점과 잘 맞지 않으면,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서 잘 벗겨지지 않는다.


직장내에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 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인가? 내가 겪은 직장생활은 마음수련의 장소였다. 나라고 썩 인간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공무직이 안정적이라서 적어도 애기엄마처럼 직장외에도 신경쓸게 많은 사람은 나쁘지 않은 직업이다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들어오니, 이 박물관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없고, 자기 밥그릇 챙기는 사람만 남았다.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박물관은 잘 돌아간다.>

아쉬운건 나지. 박물관이 아니고, 박물관은 사람을 뽑든 나눠 일하든 하면 된다.


직장생활에 대해 머릿통을 수도없이 맞는것처럼 현타를 여러번 찍을 때가 온다. 하루에 몇번씩도 얻어맞고, 어쩌다 가끔은 마음 편한 날도 온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어려운 날이었다. 술도 생각나는 날이었다.


나는 우리 박물관에 유일하게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경계를 두지 않는 사람이 있다. 실장님이다. 이 분은 팩트를 이야기하시는 분인데, 그렇다고 날 선 감정으로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하되, 박물관 전체를 보며 업무를 쪼개고, 나누고, 지시하고, 전달한다. 실장님은 중간관리자 같은 역할인데, 세세한 성격에 답답해 하는 사람도 많다. 말도 어지간히 길게 한다. 핵심과 요점만 전달하는게 아니라 전체맥락을 설명후 상대에게 업무지시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래도 나는 업무지시를 받을때 이런 분에게 받아서 기분 나쁜 적이 없다. 다소 추진력이 부족해서 학예팀을 이끄는 게 답답하다 여겨질수 있지만, 무언가가 맡겨지면 뭐하나 허투루 하는 법은 없는 분 같다.


실장님이 복용하시는 약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늘 약을 드신다. 스트레스를 발산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는건 아닌가 싶었다.


<이유없이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나는 이 분 덕에 깨달았다. 그냥 이유없이 좋아하면 뭘 시켜도 기꺼이 해낸다. 즐겁게 하고, 기꺼이 한다. 그리고 약간의 불만도 애교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불만을 얘기하면 또 다 들어주신다. 토를 달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받아들이고 또 업무지시를 하시는데, 신기한 건 일로 인해 더 가까워진다. 짐을 함께 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고, 남모르게 구멍난 부분을 커버쳐 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지금 애쓰고 있음을 알고, 조용히 응원한다. 나는 이 힘이 일에 참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업무량이 많아도 즐겁게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내가 지금 실장님한테 속고 있는건가> 싶으면서도 <속아주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해낸다.


이것이 나의 직장생활의 비결 같다. 나는 최근에 한 선생님과 크게 다퉜다. 이 선생님의 업무지시가 권위적이고 일방적이라고 느껴졌다. 또한 업무지시를 한 뒤 서두르는 바람에 내가 결국 절차를 무시하며 일을 진행시키게 되었다. 나는 이런 접점이 맞지 않아 화가 났다. 그런데 이 선생님을 <권위적. 일방적. 폭력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보니 업무를 하는데 너무나 껄끄러웠다.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서 업무를 하는데도 뭔지 모르게 지치고 힘든 것이다. 사무실이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아님 내 마음이 힘든 것인지.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면 그 사람 곁에 가기 싫다. 거리를 두고 꼭 업무적으로 필요할때만 간다.


실장님은 사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도 만날 겨를이 없이 바쁘시기에 캇톡으로나마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늘 함께 사무실에 있어서 내 마음이 쉽지 않았다.

<이유없이 좋아하는 마음>은 소중한 것인데, 모든 이들에게 이 마음이 품어지진 않는다. 약간의 경계를 늘 두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


앞으로 전시가 2주정도 남았다. 개막을 앞두고, 긴장된 분위기가 사무실 전체를 덮는다. 쉬는것도 눈치보이는 이 분위기에서 모두를 <이유없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대할수는 없지만, <이유없이 앞뒤 셈하지 않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대해보려고 한다. 아침마다 책상에 앉아 말씀을 보고 기도하며, 박물관과 가정을 축복한다. 응원처럼 기분좋은 게 또 뭘까. 조용히 (모두가 알지 않아도) 상대를 응원하며 축복하고 싶다. 내가 말실수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 선생님도, 전시 준비하시는 선임 선생님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바쁘신 내 옆자리 선생님도, 우리 박물관에서 제일 어린 내 앞자리 선생님도, 옆방에서 고군분투하시는 4명의 선생님도, 관장님과 다른 직원들도 모두 축복하고 싶다.


그냥 그렇게 머리 굴리지 않고 마음 편히 살고 싶다. 다 잘되라.


이 날씨처럼 모두가 맑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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