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 실장님 우리 실장님(2022.10.7)

실장님의 폭탄발언

by 소국

나의 사랑하는 실장님이 오늘 폭탄발언을 했다. 맨날 실장님 놀려먹느라고 실장님이 자주 하시는 말 따라하고, 실장님이 일 많이 시킨다고 당사자 앞에서 불만 아닌 불만을 내비치고, 그러면서도 서로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사 그게 아니었나 보다.


우리 박물관은 축제가 한창이라 너무 바쁘다. 그래서 거기 신경쓰느라 정신없는데, 실장님 또 학예실을 소집한 것이다. 학예실을 위해 뛰어다니는 실장님인걸 알고, 학예실을 위해 늘 회의하시는 실장님인걸 아는데, 바빠죽겠는데 또 모이라니....그러면서도 실장님 곁에 미리 가서 앉아 있었다. 실장님과 노닥거리면서 있었다.


실장님: 11시 20분에 모이자 했는데, 몇명 오나 봐봐.

나: 내가 가서 불러올까요?

실장님: 2명 오면 다행이다.

나: 오겠죠 뭐.


모이자하면 모이지 않는 학예팀을 보니, 실장님이 천불이 나는지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늘상 있는 일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사건은 이제 시작이다. 11시 20분이 되자, 실제로 2명이 왔고, 이후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실장님: 다들 바쁘신데 이렇게 또 모이자 해서 죄송합니다. 짧게 끝내겠습니다. 제가 관둡니다. 블라블라블라...


다들 놀람. 실장님의 폭탄발언으로 나는 멍했고, 실장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실장님은 다소 담담하기도 하고, 좀 떨려보이기도 했다. 나는 사실 울뻔했다. 이후 실장님은 폭탄발언을 하고, 같이 밥먹는데도 밥이 안넘어가는지 쥐꼬리만큼 드시고, 나는 실장님 밥까지 내가 먹었다.


실장님의 폭탄발언으로 내 마음은 한없이 무겁다.

진작 잘해드릴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볼껄. 실장님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20년 근무하던 근무지를 관둘까. 철없이 놀려먹었던게 실장님에게 상처가 된건 아닐까. 실장님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일까.


마음 약한 우리 실장님이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이럴까 싶어, 축제 강의중에도 문자로 대화를 나눴다. <퇴사후에는 뭐할건지><번복의 가능성은 없는지><관장님이 뭐라고 하는지> 내 입장이라는게 있고, 아직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아 속시원하게 말을 다 하지 못했지만 너무 마음이 아프다. 슬프고 우울하다.


귀한 사람 한사람을 놓친것 같다.


다른 젊은 직원과 얘기하길, 저 정도의 나이와 경력에 저 정도의 인격을 갖춘 분을 만나기 어려운데, 좋은 분이라고 서로 얘기했다. 또 우리 둘 다 계약직이라, 서로 나때문에 나가는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공감했다. 일을 못하는 골칫덩어리. 하. 너무 슬프다. 오늘 내 마음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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