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 끝난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뒤 자연스럽게 선생님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데, 내가 농담을 잘하니 농담도 주거니 받거니.
나의 선임 선생님은 요즘 컨디션 난조이신 것 같다. 이유인즉슨 갑자기 실장님이 관두다고 하지. 전시는 선임 선생님 담당인데,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지. 남들도 다 알 테지만, 정말 예민하고 신경 써야 하는 게 한둘이 아니게 생긴 거다.
그렇다한들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해 각자 전시 파트를 뛴다. 문제는 전시 외적인 일도 많아서 머리가 쥐가 날 정도이실 거다. 각 선생님들 모두. 그런데 이건 내가 도와줄 수도 없는 일이다. 박물관 직원은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많은 행정업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큰 문제이다. 행정을 하면서 전시. 교육. 학술. 행사. 뭐든 헤쳐나가야 하는데, 정말 매번 쉽지 않다.
지금, 박물관 분위기는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자인 건지. 실장님이 관두겠다고 말한 뒤부터, 분위기가 급속도로 좋지 않다. 문제는 신입 선생님 한분이 계시는데, 분위기가 완전 냉각이다. 다른 선임 선생님들도 실장님께 그렇게 냉각의 분위기로 대하지 않는데, 이 분만 유독 그렇다. 그래. 일이 많아 그럴 수 있는데,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아 우리 여직원 세명은 눈치가 보였다.
아침부터 청소기가 붕붕 사무실을 청소한다고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실장님 포함 나와 막내 직원은 다 같이 산책을 갔다. 막내 직원은 실장님이 관둔다는 사실에 꽂혀있어서 마음이 어렵다. 모든 질문이 퇴사 후 우리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건지. 술 한잔 하자. 여행은 어디로 갈 거냐. 먹고 싶은 음식 3가지 골라봐라. 뭐 이런 사소한 얘기뿐이다. 옆에서 재잘거리는 우리들이 내심 고마운지. 실장님은 자꾸 밥을 사신단다.
문제는 아침 산책 후 사무실에 입성했는데, 냉각 중인 그 선생님이 계셨고, 인사를 드렸는데 받는 둥 마는 둥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 <선생님 식사 싸오셨어요?> 그랬더니 <네>라고 답하신다. 이후 <선생님 식사 안 하세요?> 그랬더니 <먹어야죠~>하신다. 그러고는 같이 드시게끔 자리를 비워놨어도 자기 자리에서 드신다.
실장님, 막내 직원, 나는 점심 후 다시 산책을 나갔다. 산책 가자 해도 안 갈게 뻔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실장님이 나오시자마자 <사무실 분위기 왜 이래> 하신다. 막내 직원이 <저번 도록 때부터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아요.> 한다.
나는 <내가 말실수해서 시작된 거지> 했다. 막내 직원은 <선생님은 지나갔어요. 이번엔 내 차례예요> 한다. 하....
이게 뭔 일인가. 실장님의 깊은 한숨소리와 함께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하신다.
문제는 얘기를 하다 보면 이 선생님에 대해 프레임이 자꾸 안 좋게 씌워진다. 그러다 보면 이 사람만 문제 같다. 그런데 인간 사회가 양극단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쌍방의 오가는 뉘앙스. 사무실 전체적 분위기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긴장감> 뭐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혹시나 내 말 때문에 혼자 상처받고 마음이 풀리지 않으신 건 아닌가?>
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정도 사무실의 경직된 분위기에 내가 기여했다고 본다. 나의 입방정인 말 때문에 선생님이 감정이 더 날이 섰고, 결국 이런 사달이 나는구나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 옆자리 선생님은 유물 대여로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돌아오시자마자 사무실 분위기부터 묻는다. 하..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니 풀어야지 아직까지 안 풀면 어떡하나>하신다. 나는 솔직한 말씀을 드렸다. <내가 다가가기엔 사무실 직원들 다 보고 있는데, 뭔가 나의 말이 소외된 사람을 챙겨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면 무안하실 거고 그러다 보면 더 방어적으로 대답도 가능할 것 같다. 저는 타이밍을 봐서 단둘이 있을 때 차라도 한잔 하려고 했다>고 내 마음을 얘기드렸다.
실장님은 내일 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 했다. 내일 밥을 생각하니... 그 선생님이 떠올라 밤늦도록 고민했다. 문자를 보내볼까. 당일에 얘기해볼까. 아 슬프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의 태도와 나의 행동. 제스처. 말이다. 마음속 깊이 상대 선생님이 나를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내일 물어보려고 한다. <선생님 저랑 밥 먹으러 같이 가실래요?>
용서의 주체는 선생님인데, 혹여나 답변이 NO일수 있다는 걸 마음에 깊이 새긴다. 대답이 없어도 상처받지 않으리. 대답은 그분의 몫. 나는 그저 묵묵히 듣자.들을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