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훔친 압살롬(2022.10.13)
광야길에 접어드는 다윗
요즘 큐티 말씀이다. 압살롬이 결국 아버지를 반역한다.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니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성경이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고 표현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무언가를 계획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나님을 믿는 입장에서 요즘의 일련 사건들을 겪으며, 직장 내에서 나의 태도나 직장 상사들의 태도를 보며 모두가 <자기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보인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슬픔은 <공동체성의 상실> 같다. 너무 거창한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공동체성을 잃어버린 세대가 모두 열심히 일은 하지만, <자기를 위하여>하다 보니 결과물이 안타깝다. 결과가 공동체의 유익이 되기보다는 겉은 괜찮아 보이고, 속은 썩은듯한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낳고 있는 것 같다.
실장님이 20년간 근무한 재단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닳았을까. 재단의 문제만은 아니고,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고, 관장님과 실장님과의 문제만은 아닐 거라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런데 실장님과 대화를 나눠보니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자기를 위하여> 계획하고 살아온 삶인데, 한 발씩 앞으로 전진하며 살아서 겨우 이만큼 살았다고 얘기한다. 실장님의 모습은 겉은 괜찮아 보였는데 속은 말라버린 것 같았다. 다시금 괜찮아질 날이 오겠지만. 나는 그러한 실장님의 모습 속에 내 모습이 보이고,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괜찮지 않은데 멀쩡히 출근하고,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조직에 맞추는 이 반복 패턴이 언젠가는 우리를 말라가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환경에 내 던져졌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을 피한다고 좀 더 나은 상황이 올까?
내가 변화되면 좀 더 나은 환경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유익할까?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아들이 반역했는데 다윗은 도망간다. 성경은 피난길이 아니라 광야길이라고 한다. 모든 신하가 왕을 따라간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광야길을 따라간다. 왕이 가니까. 나는 이러한 충심이 없는데 대단한 충심이다. 나라면 이 험난한 여정을 택하지 않을 것 같다. 압살롬에게 잘 보일 궁리나 하겠지. 그 왕에 그 백성이다 싶다. 다윗의 개인적인 인생을 가만히 보면 연민이 든다. 들판에서 양이나 치다가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되고 나서 큰 잘못을 저질렀다.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경고대로 집안에 칼바람이 분다. 압살롬의 반역이 시작되고 다시 들판으로 가는 거다. 다윗은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함을 받는데, 그의 태도 때문이다. 실수하고 잘못을 하는데도 빠르게 인정하고 회개한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대가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어젯밤에 '잘' 사려고 노력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잘' 사려고 하다가 흠집 하나 없이 실수 하나 없이, 내 개인의 실수도 용납을 못하고, 남의 실수도 용납을 못한 채로 숨이 턱턱 막히며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잘' 사려고 하기보다는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압살롬이나 다윗이나 큰 잘못을 저지를 때 보면 정말 과감하다. 인간의 죄성이 그렇다. <자기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대부분 사람들이 과감해지는 것을 본다. 얼마나 대찬지 모른다. 죄를 지을 때도 가끔 눈에 콩깍지가 씐 듯 죄를 짓고야 만다. 다윗도 밧세바를 취할 때 그랬고, 압살롬도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잡히니 눈에 보이는 게 없다. 다윗과 압살롬의 차이는 결국 돌이킴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다윗은 마음을 돌이켜서 회개하고, 죄의 대가를 치루지만, 압살롬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다. 나의 죄를 인정하는 것도 돌이키는 것도 모두 인생의 힘이다.
박물관의 일련의 사건을 보며,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일개 계약직 주제에 뭘 한다고 나설 수도 없다. 맡겨진 일이나 잘하면 다행이다. 관장님도 서러워서 울고, 실장님이 이미 많이 울어서 관두고, 직원들의 마음도 불편하다. 이미 과한 업무에 치여서 마음이 점점 떠나는 모양이다. <자기를 위하여> 일한 결과인가 생각해보았다. 내막은 모르지만, 실장님은 관장님에 대한 신뢰가 깨져서 그만둔다고 얘기하신다. 관장님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아 모르겠지만 관장님은 외롭게 느껴지실 것 같다. 그리고 전시를 앞두고 모든 것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이 상황이 버거우실 것 같다.
상황은 어떻게 손댈 수 없는데, 성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압살롬처럼 살지는 말자. 이미 내 안에 압살롬이 있지만, 그 압살롬을 다스리면서 살자. 그리고 다윗처럼 죄의 대가에 대해, 묵묵히 책임지며 살자. 광야로 내몰리면 몰리고, 인생 한 치 앞을 모르지만 내가 하는 수많은 결정이 낳은 오늘을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견디며 살아야겠구나 생각했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가 결정하고 걸어온 오늘이구나 생각했다. 그저 오늘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마음과 생각을 품는 게 내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