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무시할 수 있는데 소화가 안된다.(22.10.17)

내 안의 열등감이 문제

by 소국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일은 재밌는데, 일의 업무량에 비해 내가 너무 일을 재빠르게 처리를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의 정도 속도면 빠르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했다. 일은 처리하는 대로 일이 쌓이는 법이기에, 알면서도 꾀부리지 않고 일했던 것 같다. 선생님들도 많이 아랫사람들을 부려보셨기에 어느 정도 내가 업무파악을 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조금씩 일을 늘려주셨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박물관 학예직 선생님의 경우는 전부 다 박사님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부 박사과정까지 마치신 분들이기에 학력이 대단하다. 논문을 지금도 쓰시는 분이 계신가 하면, 대한민국에 손에 꼽힐 전문가도 계셔서 박물관 업무 외적인 일들도 많이 들어온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명성을 날리기도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제대로 쌓는 거라 어디 나가시면 손색이 없다. 이런 분들 사이에 계약직 애엄마 여직원이 버티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주 분야인 역사 얘기가 나와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알아들으면 다행이고 못 알아듣는 내용들이 참 많다. 역사를 풀어 설명하면 다행이나, 박물관의 전문용어나 아님 역사에서나 자주 사용하는 말들은 참 뭔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듣고 앉아 있다.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교과서 외적인 내용들을 들을 때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 열등감이 대단하고 큰 건지... 이 기분이 꽤 오래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가>

<박물관 업무 하는 데는 반드시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디자인 전공자이신 선생님도 계신다. 비록 역사 전공이 아니지만 박물관 업무 경력만 15년 넘게 일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디자인 전공 쪽으로 박사학위까지 있어서, 특별전시, 기획전시 등 전시설계나 도면 작업을 직접 다하신다. 업체를 끼고 하지만, 아주 정밀하고 디테일하게 보실 수 있는 분이다. 이 분은 박물관 전시 때마다 큰 역할을 하시는데, 남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을 전공자로서 큰 역할을 해주고 계신다. 업체랑 통화할 때 쓰는 용어가 뭔 말인지 사실 나는 못 알아듣는 게 태반이다. 각 분야에 특화된 분들이 계시고, 각자의 영역에서 박사님이셨다.


참........


직장에서의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건 쉬운 일이었다. 박사님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러다가 농담하고 놀고 있는데, 그분의 역사를 아니, 마음이 갑자기 멀어진다. 내가 간사한 걸까. 당연한 걸까. 선생님들의 스펙을 듣다 보니 내가 이렇게 농담 따먹기나 할 만한 상대가 결단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대박은 한편 박사님들도 일개 박물관 직원이라서, 너무너무 괴로운 직장생활을 매일매일 참아내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답답한 현실을 박사 타이틀을 달아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각자 상황이 있어 직장 생활하는 처지인데, 생각보다 하루가 녹록지 않고 그게 쌓여만 가니 박사님들이어도 방도가 없었다. 우리 실장님은 논문만 23년을 쓰신 대단하신 분이다. 인생이 고스란히 다 바쳐진 꼴이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는 얼굴에 얼핏 씁쓸함이 묻어났다. 이런 걸 안 보고 싶은데, 보인다.


오늘은 나에게 <담배 피워봤어요?>한다. 박물관 업무에 대해 재밌지만 힘들다고 표현했고, 모든 일이 나에게는 그런 것 같다고도 말했다. 육아나 집안일도.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더니 그렇게 물어보셨다. 뒤로 몰래몰래 이것저것 할 것처럼 보였나 보다. 아쉽게도 난 아직이라, 안 피워봤다고 했다. 어째 분위기가 꼭 이분은 피워봤을 듯싶다. 그랬더니 <한번 피워봤단다> 그러고는 <아 이거 너무 위험한데> 싶었단다. 절제력도 대단하다. 박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하. 나도 모르게 박물관에 가면 한숨이 난다.

미안하기도 하고, 짐이 안되야할 텐데 하며 애쓰기도 하는데, 과연 이게 맞는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는가. 무시하려는 무시가 아니라 완전히 배제가 되는 기분. 나란 존재가 그냥 없는 느낌을 여러 번 경험했다. 처음에는 무안했다가 다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욱했다가.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생님들이 일부러 나를 소외시키는 것도 아니라 상관없다고 여겼는데, 내가 이런 배제당하는, 혹은 그냥 당연히 뒤로 빠지게 되는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마주해야 괜찮아질는지. 그리고 언제가 돼야 업무와 학력을 별개로 볼 수 있는지. 싶다.


일단은 내일도 달려야 하므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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