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을 날마다 이기며 살았다.(2022.10.23)
지난 세월을 떠올려보니 사는 게 그렇다.
무안을 당하는 일은 정말 다반사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늘 그 생각이 하루를 살고 나면 마음과 머리에 남는다.
회사생활의 80%가 무안을 당하는 건데, 이걸 이겨낼 수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말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들릴까 생각하면 솔직해지지 못하니 그냥 한다.) 돈 얘기가 너무 저급한가. 그런데 내가 겪은 직장생활은 누군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냥 누구 하나는 무안을 당하기 마련이고, 이 분위기와 이 문화를 견뎌내는 사람만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았다. 우울과 공황장애가 오지 않는 게 나는 이상할 만큼 멀쩡히 다니는 직장인이 더 신기할 노릇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해보겠다.
가정생활. 가족과 함께 사는 건 혈육일 뿐 엄연한 남이랑 사는 일이다. 얼마나 부대끼고 힘든 일인지 모른다. 남편과 사는 것도 힘든데, 자식이 있다면 그보다 2배 더 힘들고, 나처럼 시어머님과 산다면 3배는 더 힘들다. 성격이 무던하면 다행이지만 나 같은 성격은 더 힘들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데 얼마나 힘들겠나.) 가족 중 누구 하나가 말에 날이 서면, <내가 뭐 잘못했나?> 사고 회로가 이렇게 돌아가는 사람은 남과 사는 것 자체가 괴롭다.
나는 가족들이 가장 가까운 적일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꿈과 용기를 주는 말보다, 아주 냉철한 비판과 내용이 난무한 대화가 오고 간다.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 사는 게 퍽퍽하니 더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게 형편이 나아진다고 바뀔 것 같진 않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버린 말과 행동, 살아온 동안 세상에 대한 불신, 살아온 날들에 대해 본인의 경험, 여러 관계 속에서의 상처가 거듭될수록 말은 더 날카로워진다. 남편만 해도 42년 나름 애쓰며 살았는데, 쉽지 않았고 앞으로 더 쉽지 않을 것 같아 이미 마음이 무거워진 상태이다.
나는 날마다 무안함을 겪으며 정신수양을 한 것 같다. <이건 내 탓이 아니고, 저 사람의 감정의 몫일뿐이다. 저 사람이 미성숙하게 소통을 하고 있다.>라며 어디서든 되뇌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에는 바로 <나>의 모습이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녀 양육을 할 때, 아이를 무안하지 않게 하면서 훈육을 해야 하는데 그 지점을 찾는 게 아직도 어렵다. 무안하지 않게. 정말 둥글게 표현하는 게 어렵다. 인내심의 한계가 찰 때는 결국 버럭으로 끝나고 한숨으로 마무리되고, 아이는 스스로가 <나는 장난치는 아이. 말 안 듣는 아이>로 자기 자신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마친다.
아이가 얼마나 솔직한지 모른다.
<왜 나만 혼나야 돼?>
<엄마한테 복수하려고>
<걔가 먼저 했으니까>
이 논리들은 내 아들의 논리인데, 납득이 된다. 문제는 아직 1차원적으로 밖에 생각이 안되니, 아주 정직하게 반응한다. 그 밖의 기타 등등이 안 보이고,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지극히 논리적인 이유를 대며 따져보는 것이다.
무안함. 이 아이도 엄마가 일방적으로 혼낸다는 생각에 무안했을까?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생각하는 건 아닐까?
무안함을 날마다 이기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야 무안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의 언어. 상황. 습관 등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냥 무안하다. 반대로, 무안을 주는 사람을 그냥 생각만 해봐도 덜 무안하더라. <뭔가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데 방법이 서투르네> 정도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무안을 주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그런 말 습관이나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거나 다른 데 관심이 있어서, 정작 상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마 나는 오늘 그 실수를 아이에게 저지른 것 같다. 아이가 장난이 지나치다는 생각에 기어이 일으켜 일방적으로 혼냈다. 엄마가 아이에게 무안을 준 것이다.
무안. 정말 치가 떨리도록 싫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일이 많다. 도로 운전만 해도 내가 잘못한 거 없는데 뒤차가 괜히 빵빵거릴 때도 있었다. 무안하다.
앞으로 수도 없이 겪을 무안함에 날마다 마음의 대비를 하지만 늘 속수무책이다. 앞으로 나보다 연약한 자에게나 무안을 주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듯하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안을 당했다고 치졸하게 도로 복수하진 말아야겠다. 남편이든 가족이든. 차라리 무안할 때 그냥 <무안하네> 말 한마디 하고 말자. 내가 무언가 깨우치지 못한 게 있다면 <뭔 말인지 모르겠네> 그러고 말자.
p.s: 무안을 이기며 살았다고 적는 순간, 내가 무안을 준 것들이 생각나버렸다. 참. 사람이 너무 생각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