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봤다.(2022.11.3)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처음 봤다.
국민 애도기간이어서 박물관의 모든 일정이 올 스톱하는 듯 보였다. 뭐든 조심스러운 기간이었는데,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계속 운영하는 듯 보였다. 교육프로그램 담당자 선생님은 오늘 참여자가 적어서 걱정하는 듯 보였다. 갑자기 우리 아이들이 참여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눈을 정말 껌뻑이며, 점심밥만 우걱우걱 먹자, <선생님 귀찮죠??> 이런다. 맞는 말이다. 표정에서 내 마음이 드러나서 안타깝지만, 그게 나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결국 직장이라 하고 싶지 않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게 될까 두려워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도 있었다. 소리 지르는 엄마 되기 싫어서 일을 안 벌리는 쪽에 가까운 엄마다. 굳이 뭐하러 이벤트를 해서 관계를 망치나. 좋은 거 주려다가 괜히 좋은 관계 망가진다는 게 내 지론인데. 그냥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듣기 좋은 말로 기분 좋게 서로 지내자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런데 사실 얼마나 비겁하고 소심한 발상인가.
그래서 박물관도 도울 겸 나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겠지 싶어 큰 맘먹고 애들을 픽업해서 박물관으로 왔다. 아이들은 달을 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특히 둘째는 표현이 극적인데, 이미 들떠서 <엄마 빨리 가자 문 닫겠다> 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첫째도 말은 없지만 행동이 빨라졌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기분이 묘했다. 사무실에 모든 선생님들께 인사를 시키자,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이들은 30분 정도 사무실에서 그림도 그리고, 화장실도 가고 떡도 먹고 과자도 먹으며 지내다가 교육을 들으러 장소를 옮겼다.
생각보다 수업은 재미있었다. 뭔가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새로운 사실을 정말 많이 알게 되었다. 달의 운석 구덩이, 처음 달에 착륙한 사람은 닐 암스트롱이 아니었다는 사실, 슈퍼문은 없다는 거, 달의 표면은 지구에서 볼 때 다양하게 보인다는 거, 지금 한국과 미국이 달 탐사 프로젝트에 함께 추진 중에 있다는 거 등. 정말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다.
저녁 7시경 천체망원경으로 본 달의 모습천체망원경으로 본 달의 모습은 정말 신기하고 새로웠다. 아이들과 이런 경험을 한다는 건 행복이다. 만약 나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시도를 아이들 덕분에 했다.
사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최대 수혜자인 것을 깨닫는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들 때문 에라도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바른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 혼자라면 하지 않을 시도를 그래도 해볼까? 하며 해보게 된다. 엄마라는 역할 때문에 억지로 한다기보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랄 아이들이니까. 세상이 풍요롭고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라고 알려주고 싶으니까.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지만, 세상이 어떤 곳인가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알까? 나는 어릴 적에 세상은 믿을만하지 못하고, 폭력적이고, 나에게 다정하지 못하고, 곳곳이 불안한 곳이었다. 늘 모순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요즘 느끼는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며 지으신 곳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연을 보면 정말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마저 받고, 사람을 볼 때에도 약간의 슬픔과 결핍이 있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전쟁과 가난. 기근. 끝없는 불안한 소식. 참사 등 현실의 가혹함은 어디서건 현재 진행 중인걸 모를 리 없다.
자연과 대비될 만큼 우리의 현실은 가혹하지만, 그럼에도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우리 삶에 녹아있다는 걸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을 예측할 수 없는 박물관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자기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이 터진다. 늘 그렇다. 그런데 이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보니 빠르게 대응하는 게 능사인가?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건가? 고민이 한도 끝도 없다. 과연 이게 얼마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을 것인가? 박물관은 무엇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건가? 끝도 없는 질문이 타고 타면, 결국 본질의 문제까지 도달한다. 박물관 선생님도 특성이 다양해서 각자가 업무에 대처하고, 관계에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 그것도 피곤하다. 아이디어를 내고 책임을 못 지면 그냥 말을 말지. 끝까지 아이디어를 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업무 하나 더 얹는 사람.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어서 티끌 하나까지 지적하는 사람. 사무실의 돌아가는 상황은 뻔히 알지만 내 일 외에는 적당히 거리 두는 사람. 모든 게 일이니 어지간하면 일을 쉽게 처리하고자 하는 사람. 관장님 말이면 그냥 법인 양 따르는 사람. 열심히는 하나 알맹이가 없는 사람 등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아침 7시경 본 일출오전 내내 너무 괴로웠다. 나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의 벽 앞에 괴롭고, 나 자신이라도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어려워 괴롭고, 선생님들의 의도가 나쁜 건 아닌데 누구든지 잘해보려고 애쓰시지만 마음이 맞지 않아 괴로웠다. 해를 보며 기도했는데, 온통 까먹고 모든 시간을 또 불평불만, 괴로움 , 사람들의 눈치 속에 보내다가 아이들 덕분에 차 안에서 함께 <은혜> 찬양을 부르고, 좋은 구경 했다고 고맙다고 했다. 오늘도 아이들을 낳은 엄마는 아이들 덕분에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해준 게 없는데 나는 아이들 때문에 늘 감동을 받아 고맙다.
천체 수업 중 선생님이 <제주도에 가 본 사람??>했더니 우리 아이들 빼고 나머지가 손들었다. 그때 부끄러움을 내가 느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부끄러웠다. 둘째 아이가 눈치를 보더니 손을 들었다. 무리에 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뒤에 관장님. 다른 선생님들도 수업을 듣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의 형편이 제주도도 못 가는 형편처럼 비칠까 봐 참 낯부끄러웠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맞다. 제주도 여행 큰맘 먹고 가야 하니 엄두가 안나기도 했고, 남편의 말을 무시하기도 했다.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 다녀오면 몇십만 원 그냥 나가는 게 너무 허무했다. 즐겁긴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게 사실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추억 만들기를 해야 하는 건가. 남들 쫓아가다가는 가랑이 찢어지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첫째와 둘째 모두 학교와 유치원에서 제주도 다녀온 얘기를 다들 스스럼없이 했나 보다. 제주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은연중에 부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알고 있지만 모른척했다기보다 언제고 한 번은 가야겠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이 얘기를 꺼내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 앞의 친구가 제주도 갔다고 하니 엄마가 너네들 제주도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그리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비행기 타고 베트남을 간 게 생각났다고. 주일학교에서 <비교하지 않아요>에 대해 배웠는데 바로 비교했다고. 그러면서 다시 과거 우리가 갔던 여행을 얘기하며 서로 생각나냐고 이야기하며 대화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이 족하다. 이걸 알아야 한다.
언제쯤 철들까. 참 내가 부끄럽다. 그래도 오늘도 힘닿는 만큼 열심히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