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2022.12.16)

엄마의 영원한 고민, 양육

by 소국

학부모들이 마냥 편할리 없다. 이상하다. 나만 그런가.


<만나면 편하고 마냥 좋은 관계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결혼 10년 차가 되니 남편도 내 죽을 못 맞춰주던데>


하. 대안학교. 나는 왜 보냈지?

좋은 커리큘럼. 그래. 이거였던 것 같다.

사교육을 일절 시키지 않으리 다짐하며, 보낸 대안학교. 오호라. 보내 놓고 나니 말이 많다. 학부모 모임만 끝나면 뒤숭숭해지는 내 마음. 너는 정체가 뭐니. 내 마음의 정체가 뭘까?


첫째 아이는 생각보다 똑똑하고, 눈치 있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 같다. 고작 9살이지만, 지켜야 할 것들을 알고 교우관계의 난감한 순간들도 잘 넘길 줄 안다. 사실 융통성 있게 넘기진 않지만, 자기 입장 곤란해질 것 같으면 피한다. 이 정도만 돼도 다행이다 싶다. 현실세계는 평가와 이미지가 난무하니, 자기 밥그릇 챙길 줄 알고 관계 속의 어려움들을 자기 나름대로 헤쳐나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내 마음의 정체.


내 아이가 우월하다는 생각과 네 아이가 발달이 떨어진다는 생각. 그래서 교우관계 속에 나는 잃는 게 많고 넌 얻는 게 많다. 우리 아이가 늘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 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자리 잡혀 버렸나 보다. 친구의 소중함은 어디로 가버리고, 위아래 서열로 교우관계가 정의 내려져 버렸는지. <맞춰준다>는 말의 뉘앙스부터가 이미 글러먹었다.


어쩔 수 없는 숫자 때문에 이렇게 놀아야 한다는 강박.


한 반의 아이들 숫자가 워낙 적어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엄마들. 그리고 우리 아이랑 놀아도 잘 맞아서 노는 건지. 아님 친구가 없어서 그냥 노는 건지 궁금한 엄마들. 친구가 뭔 물건도 아니고, 대체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술적이고 악랄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부터도 친구를 이용하려 드는 생각이 앞선다. 교우관계도 기술이고, 능력인가? 아이들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건 결국 학교와 부모인 게 맞다.


내가 제일 으뜸가는 죄인이고, 우리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끄는 게 내가 먼저 할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아이가 물품도 아니고, 양육 책 한 구절 대입하면 뚝딱 될 것 같은가. 양육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생은 실전. 양육도 실전. 초등학교 생활도 실전.


결국 살아내야 아는 거다. 불편함과 편함. 공존과 상생을 위해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내 아이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엄마들은 사실 그거보다 결과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수학공식처럼 이걸 대입했는데, 왜 우리 아이는 안될까>에 골몰한다. 그 사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묘하게 엇갈린다.


아이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안다고,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그걸 알면 나는 버거울 것 같다. 양육서처럼 체계적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우관계의 정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로 인해 우리 아이가 친구를 물품처럼 대하고, 언제든 대체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그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고, 감사하길 바란다. 친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에게는 초등학교의 추억을 함께 나눌 소중한 친구임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엄마인 내가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겠다 싶다. 경계를 조금 늦추고, 마음을 조금씩 더 열도록. 소중하고 다정하게 대해줘야겠다. 엄마든 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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