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뭐라 형용할 말이 없다. 결혼을 13년에 하고, 14년에 아기를 가졌다. 내 나이 28살에 뭐라 그리 급했는지.(아기도 뱃속에 없었는데) 우리는 서둘렀다. 그리고 9년 차? 10년 차 되어가는 부부이다.
나는 현실의 남녀관계는 드라마와 영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한 키스는 남편이고, 처음 한 섹스는 남편인데 둘 다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러운 기분이 더 들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남자들은 왜 이런 걸로 여자를 만족시키려 하는 미련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환상이 깨졌다.
분명 같은 가로등 아래인데, 난 너무 으슥한 느낌이 들고, 추잡한 느낌이 들었다. 행복하고 사랑받는 기분이 아니고, 뭔가 드라마와 영화 같지가 않았다. 이게 내 기분과 느낌의 솔직한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나중에야 사랑받는 느낌을 받고, 나중에야 만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정말 제발 남자들이 이상한 거 보면 따라 하지 말아라. 스킬이 부족한 남자는 그대로 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걸 아줌마가 되고 나니 알겠다. 아줌마도 스킬이 없으니, 나중에 남편과 열심히 합을 맞추어 이제는 제법 만족도가 높다. 스킨십도 각자가 원하는 속도며 뭐며 다 있더라는 거다.
영화를 보는데 어쩌면 저렇게 현실적일까.
너무 찐으로 행복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아주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 주인공의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삶을 사는데 내가 조연 같아> 이 생각을 나는 결혼생활 초반부터 했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게 뭔 줄 알아? 네가 얼마나 멋진지 깨닫게 해주지 못했다는 거야> 헤어진 남자 친구가 췌장암에 걸려 죽기 전에 여자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 남편이 나에게 결혼하자고 말할 때 <당신은 보배로운 사람이다. 당신이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지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울 뻔했다. 여자 주인공의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이 너무도 이해가 되어, 영화 보는 내내 그냥 그 여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듯했다.
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두려움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나온다. 나는 결혼 직후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다. 너무 충격이었다. 사실 신혼여행까지는 우리는 행복했다. 대한민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정말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혼 직전까지 우리는 싸워대기 시작했는데, 아기 소식을 카페 화장실에서 혼자 임테기 확인을 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기를 가졌음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2일에 1번꼴로 싸움이 나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지속했다. 나는 임신기간 중에도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한 결혼은 이게 아닌데... 엄마는 아직 부담스러운데... 이런 삶을 내가 원한 게 아닌데... 저 사람이랑 영원히 살아야 하는 건가? 이렇게 내 삶이 끝나는 건가?> 혼란과 혼돈, 극심한 관계 스트레스가 지속되었다. 그리고 아기가 유산되었다. 아기를 가진 것도 충격이었는데, 그건 약간의 희망이 섞인 정체모를 두려움의 충격이었다면, 유산은 절망과 가까운 엄청난 죄책감 같은 충격이었다.
여자 주인공의 아기도 결국 유산이 된다. 그 주인공의 탓은 아니겠지만, 난 묘하게 또 공감해버렸다. 주인공이 겪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 두려움이 유산 직전에 내가 겪은 기분과 느낌이라, 뭐라 형용하기 어려웠다. 여자 주인공의 눈빛에 서린 두려움이 아마 그때 내 눈빛이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여자 주인공은 두 번째 만난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 무렵 남자 친구에게 한 말이 기억 남는다. <넌 커피나 나르는데 만족할지 모르지만, 난 더 많은 걸 원해!> 이것도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 아마 최근 1년 전쯤이었을까? 아님 몇 달 전일까? 싶을 것 같다. 남자 친구가 대답한다. <너무 상처받아서 할 말이 없다> 남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영화 곳곳에 남편과 나의 주고받은 말들. 흔한 남녀관계에서 하는 말들이 숨어있었다. 이런 지겨운 말들을 주고받으며, 용케도 9년을 산 걸 보면 대단하다.
사실 위 영화도 너무 좋았지만, 2시간이라는 꽤 긴 러닝타임 동안 야한 장면 하나 없이 지겹도록 말만 하다 끝마치는 <비포 미드나잇>은 내 인생과 너무 닮은 꼴 같았다. 선라이즈부터 미드나잇까지 봐야 제대로 영화를 본 것이겠지만, 37살 아줌마는 미드나잇이 아주 제격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이랑 관계 중에 욕을 한 적이 있다. 욕도 하고 정말 심하게 싸운 적도 있다. 관계 중에 말하면서 싸우는 것이다. (이런 부부는 없는지 정말 궁금하다) 키스를 하면서 말하다가 싸운다. 그러다 관계를 하면서 거기에 집중을 하지 않고, 생각이 다른 곳에 튀어서 갑분 쌈닭이 된다. 그리고 알몸으로 등 돌리고 잔다.
그런데 이 영화의 부부가 너무 우리를 닮아서 깔깔깔 거리며 찐으로 행복하게 봤다. 여자 주인공의 말이 문제다. 로맨틱한 호텔 안에서 남편과 아이들 없이 오래간 만에 오붓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데도, 웃옷을 훌렁 벗어젖히고 젖가슴을 내밀면서도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다다다 다다다 다다다 다다 쏴 붙이는 꼴이 꼭 나 같아서 너무 공감되었다. 민망하기도 하면서 다들 이런 건가 싶으면서. 마지막 에단 호크의 대사가 인상적인데, 말도 안 되는 애교로 여자 앞에서 난리 부루스를 치다가 안 통하니까 <이제 당신이 선택해. 영화 같은 일은 없어. 난 풀기 위해 노력했고, 이게 현실이야> 하는 말. 하. 정말 우리 남편 같아서 귀싸대기 날려주고 싶었다. 여주인공이 모르겠나. 이 인간과 살면 또 같은 문제로 싸우리라는 것을. 그렇지만....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상대를 향한 자그마한 애정과 감사도 남아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그 마음이 내가 남편을 향한 마음이다)
결말도 결국 웃으며 끝난다. 현실 웃음.
나는 이게 너무 인생 같다. 두렵고 무섭고 불안하고 화나고 싸우고 이해되지 않고 괴롭고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그런 것 사이사이에 가느다란 햇살 같이 반짝 빛나는 것들이 있다. 그냥 이게 인생이다. 대부분은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고, 매 순간이 혼란과 혼돈의 연속이다. 내가 정신분열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이런 기분과 감정을 더 많이 느낄 거라 생각된다.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이 더 모호하고 불확실할 때는.
유튜브를 보는데, 한 청각장애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성인(이런 자녀들을 '코다'라고 한단다.) 여성이 인터뷰하는 걸 봤는데, 아버지한테 수어로 물었다. <만약에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해?>라고 묻자, 아버지가 <괜찮아. 그냥. 괜찮아. 그냥 그렇게 살면 돼.(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하시는데 눈물이 쏟아질뻔했다.
괜찮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설사 내가 잘못한 선택을 했다 해도. 괜찮다. 그냥 살면 된다.
두 영화의 여자 주인공들의 결말이 다르다. 한 명은 모든 남자들과 헤어지고 혼자만의 길을 간다. 한 명은 지지고 볶는 현실을 다시 택한다.(언젠간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어쨌든 나는 이 둘의 결말 모두가 맘에 든다. 그냥 살면 되니까. 정말 인생은 '사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거다. 어떤 모양과 형식에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데(밥 먹고 똥 싸고 지지고 볶고 회사에서 쌈질하고 집에서 쌈질하고 등 혹은 회사에서 주눅 들고 집에서 주눅 들고 등) 의미가 있다는 걸 이 영화들이 내게 알려줘서 고맙다.
죽지 말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거다. 인생은 그냥 그 자체로 참 귀하고 소중하다. 그것 자체로 의미 있다. 지지고 볶고 괴롭고 환장하겠는, 정말 어느 순간에는 맥이 탁 풀려서 정말 이제는 못 버틸 것 같은 순간이 오더라도, 나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고, 오늘 하루가 그지 같고, 내 인생에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해도, 괴로움의 연속을 하루하루 보낸다 하더라도 이 시간과 환경은 정말 누군가가 내게 허락한 <기회>이긴 하다. 정말 그렇다.
희망은 일말도 비추지 않은 영화들에게서 오히려 삶이라는 커다란 희망을 본 듯해서 흥분되었다면 뻥 같을까? 결말이 너무 시덥잖은데, 나는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