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란 영화(2022.12.15)
명대사: 난 뭐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보이후드>란 영화를 알게 되었다. 남동생이 꼭 보라고 추천했고, 각종 미디어에서도 수차례 추천했던 영화였기에 나는 언제고 꼭 보리라 다짐했던 터다.
그런데 나의 처지는 애 둘 엄마, 집안일 산더미. 하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하고야 만다. 오전 시간 3시간을 짬을 내서 기어이 하고야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비포~> 시리즈 감독의 영화라니. 당연히 꼭 봐야지. 게다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12년이 걸렸단다. 배우인 에단 호크에게는 감독이 혹시 내가 죽으면 네가 이어 찍어라 했다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데 맞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어느 면에서 감동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주인공 엄마(올리비아?)가 영화 끝무렵에 아이들이 대학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며 이야기할 때, 갑자기 울면서 감정을 토해낼 때 너무 기가 찼고, 한편으로는 너무 이해되었다. 엄마가 너무 욱했다 싶었는데, 마지막은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감정의 정점이었다.
<난 뭐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와...... 내 마음을 후벼 판 대사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결혼 3번에 이혼 3번. 아이들 자립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위한 경제적 책임. 더 나은 형편을 위한 공부. 대학교수를 이뤘지만, 결국 엄마의 마음은 저것만 남았다. 저 말을 바꿔 말하면, <뭐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서 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대학생이 된 아들 앞에서 무너지며 그렇게 엄마가 울었다. 대학생이 된 아들이 이 엄마 마음을 알까? 난 모른다고 확신한다.
대신 아들은 무거운 마음이 들었을 거다. 한국사회와 달리 미국 사회라서 과도한 부모에 대한 책임감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저런 말을 들으면 자식은 가지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을 갖게 된다.
엄마의 삶은 처절했지만, 객관적으로는 엄마의 선택이었다.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이룬 결과라고 말하면, 너무 참혹할까? 지금의 형편의 불편함과 만족스럽지 못한 감정과 더불어 냉정한 현실(경제적 문제)에 부딪혀 엄마는 끝없이 전쟁터에 내몰리는 듯 살아왔다. 엄마의 열심을 알지만, 엄마의 편을 들 수가 없다.
나는 냉정한 현실이지만, 소박한 낭만은 엄마 스스로 가꿀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남자가 아닌 다른 것으로, 형편의 불편함을 지위 상승이나 돈 아닌 다른 것으로는 대체할 수 없었을까?
사실, 이 대사가 너무 와닿았던 이유는 내가 지금처럼 살면 결국 저 꼴이 나겠구나 싶어서 머리통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내달리나? 아이를 위해 돈을 벌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밥을 하고, 집안일하고, 필요하면 공부도 해야 하고, 뭐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사나? 뭐 때문에 그토록 기도하고 예배하나? 이런 생각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보이후드> 마지막 대사는 이거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가 이 순간을 붙잡는다고. 그런데 나는 이 말을 거꾸로 해야 할 것 같다.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다고.>
그래. 방법은 이거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을 목표로 내달리는 게 아니라 순간을 살아야겠구나. 지금 이 순간.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눈앞의 광활한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 대사였지만. 현실의 나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늘어진 장난감들을 치우고, 부엌에 설거지와 사투를 벌이고, 어색한 어머님과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남편의 철없음에 늘 놀라고, 아이들의 끝나지 않는 장난에 폭발 직전인 상황이지만 이것이 나의 삶이고, 목적이고, 전부가 되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12년 찍었다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위태롭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위태롭지만 강했다. 사실, 어른보다 훨씬 강했다. 오히려 어른들이 절벽 끝에 내몰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 그 시선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겼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더 안타까운 건 나의 노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고, 열심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다. 아이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고, 장난감을 치우며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설거지나 집안일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해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등원시키며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그저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이라고만 여기고, 아주 열심히 집안일과 바깥일을 하지만, 체념적으로만 살게 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엄마와 아이를 보니, 아 정말 나의 뒷모습을 보고 클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다. 방금 5초 전까지의 나의 행태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이게 삶이겠지만, 이것을 목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늘어진 집안일과 나의 모든 잡무들. 양육. 가족관계가 전부인 삶. 이게 목적이 되지 않으면 결국 다른 걸 목적으로 삼고, 파랑새를 쫓다가 뭔가 뒤통수 맞은 것처럼 인생에 뒤통수 맞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아니라,
나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나는 남편의 쓸데없는 농담을 듣기 위해 결혼한 사람~
나는 어머님의 세금 걱정 돈걱정 자식 걱정 듣기 위해
합가 한 사람~
나는 니들 똥 닦아주기 위해 애 낳은 사람~
나 자신아, 정말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껍데기만 남지 않으려면 결국 지금을 잘 살 수밖에. 웃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