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지 같은 기분을 만끽하도록 하고 싶다면, 누구든지 싸우면 된다. 그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극대화된다. 싸움의 원인을 찾아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는 내가 그 감정을 되도록 오래 품고, 계속 리플레이처럼 묵상하면 2차 싸움이 발발한다.
나는 타고난 싸움꾼 같다. 성격이 모난 건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화가 자주 치밀어 오른다.(딱 이 표현이 맞다) 그냥 일상을 쳐다보고 있으면, 무기력과 분노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문제는 몸이 아프면 분노가 더 빨리 차오르고, 뉴스를 보면 무기력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지고, 일상을 보면 버거운 게 사실이다.
남편은 잘못 없다. 마누라가 옆에 있는데, 너무 외로우니까 날 만졌을 뿐이다. 스킨십을 원래 좋아하는데, 마누라는 자기를 본체 만 체 하니 먼저 다가서기도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없는 애교를 짜내어 마누라 옆에 누워 내 몸을 더듬었는데, 마누라가 <아~ 진짜>하고 밀어냈을 뿐이다.
그리고 마누라는 발도 아프고, 가족들이 모두 모인 주말이 즐겁지 않고 삼시세끼 차리느라 피곤하다는 표정을 하며, 누워 낮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아이들과 남편과 어머님이 TV를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부엌에 가서 저녁에 먹을 반찬거리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방문을 열며 큰아이에게 <또 티비야?>라고 했고, 이후 나는 큰 애한테 거실에 늘어진 공책과 책들을 치우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남편이 버럭 한다. <그 공책이며, 책들 나중에 치워도 되잖아!!> 밥 먹게 정리하라고 몇 번 얘기했다고 그렇게 화낼 일인가.무안했다.
더 당혹스러운 건 남편은 자기는 화낸 적도 없고, 짜증 낸 적이 없단다. 평소에 다정할 때와 다르게 뭔가 뉘앙스가 다를 때가 있다. 이상하게 말꼬투리를 잡는다거나, 아님 딴지를 건다거나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아이에게 말했는데 자기가 뭐라 한다거나. 나는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인가 싶을 만큼 늘 당혹스럽다.
그런데 자기는 모른다.이게 더 화가 난다.
남편한테 한 소리 듣고, 부엌에서 투덜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게 한 소리 들은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도 정신 차리고 방에 들어가 <내 말투가 좀 그래서 그러냐? 노력하겠다.> 했다. 그런데 남편은 놀라는 표정이다. 뜬금없다는 표정이다. 나는 어머님도 아이들도 보는 눈이 많아서 대충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뭔가 나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걸 표현한 것 같은데, 나도 정확히 모르겠고, 당사자인 남편도 의아한 것 같았다.
하. 나는 이런 경우가 골백번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더 예민하게 눈치채서 정확한 포인트를 찾아내야 했다. 어떤 부분이 기분 나쁜지. 왜 화가 나는지. 사실 가족들은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지금 내가 화가 나는지 나지 않는지 조차 구분을 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그리고 타인이 자기에게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겠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이러니 답답하다. 타인인 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난감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러는건 좋은데 이렇게는 하지 말아줘>라고 얘기해줬으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
그래도 나는 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쳐 들지 않고, 본인 감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사건 후에는 꼭 짚어서 이야기하곤 했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당사자가 무슨 생각과 마음이었는지가 궁금하고, 그런 감정 표현을 타인인 내가 받을 경우 당혹스럽거나 난감했다는 얘길 꼭 해 주는 편이다.
이 노력이 얼마나 갈까. 싸우고 싶은 쌈닭의 본성을 오늘도 가까스로 참고 눌렀다. 아이들의 말이 무서워서 참았고, 뭔가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나 본데 나도 생각하지 못했나 생각하며 참았다. 9년 살았다. 앞으로 10년 더 살면 눈빛만 봐도 이해하고, 참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게 될까?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입에서 험한 말을 쏟아붓지는 않았고, 남편의 노력과 나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봉합하긴 했으나..... 늘 이렇게 아슬아슬하다. 우리 잘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