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자, 남편이 들어왔다. 나의 뇌는 빠르게 작동한다. 오늘 일을 말할까 말까(이것이 과연 부부관계나 우리 집에 도움이 될만한 발언일까 아닐까?)
어머님과 언쟁이 나면, 속이 뒤집힌다. 그리고 다시 이혼을 생각한다.(오늘은 이혼서류부터 이후에 아이들 양육은 이 집에서 알아서 하라 그러고, 혼자 나갈까 고민했다.)
그러다 남편이 웃으며 퇴근하니, 생각이 달라진다. 운을 이혼으로 떼볼까, 진지하게 얘기를 해볼까. 하. 나는 더 못살겠는데. 너무 힘든데. 뭐라고 얘기를 해볼까. 나의 찰나의 고민은 끝이 없다. 남편은 군말없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 뭐 특별하게 잘해주는 것 없이 있는 반찬에 먹는다. 반찬투정 안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냥 무사히 하루가 넘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이 식사후, 어머님 방에 기웃거린다. 그냥 어머님 안부 묻자고 들어간것 같은데, 어머님은 남편을 잡고 또 재정 얘기를 하신다. 이번에는 우리 마이너스 통장 건에 관한 것 같다. <마이너스 통장 관리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부터 <내가 너희를 이렇게 도와줄테니, 이후에 너희가 나한테 이렇게 해달라>등 방문 틈으로 소리가 다 새어나온다. 예전 같으면 가만히 들어보겠지만, 오늘은 그냥 패스한다. 아이들 챙기는 척 부산떨고 아이들과 방에 들어갔다.
찰나의 모습 속에 남편은 <엄마 그냥 제가 알아서 관리할게요>정도로 방어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내 몸의 반응이 더 웃겼다. 가슴을 조여오는 듯한 통증이 사라졌다. 이상하게 요즘 가슴을 조여오는 듯한 통증때문에 안그래도 짜증나는데, 더 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꼭 어머님이 굳이 얘기하시지 않아도 나 스스로 신경쓰고 있는 부분에 대해 (경제,집안일,육아등등) 한마디 하시면, 심장이 쿵쾅거리거나 가슴이 조여왔다. 그런데 내 몸의 반응과 달리 생각은 어떠하냐면, <하. 정말 어머님을 핑계로 몸까지 아플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확 스쳐지나간다.
마음 속 깊은 곳은 결국 인생은 내 인생이고, 내가 선택한 결과인데, 어머님이 몇마디 했다고 아프기까지 할 정도인가. 이게 과연 옳은 반응인가? 하며 스스로 타박하기 바쁜것이다.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가 아니라 그냥 자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고, 나 자신이 누굴 탓하고 싶지 않아서 나름 용쓰며 살기 때문인것 같다.)
그뒤로는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과 여유로운 대화와 돌봄이 가능했다. 그렇게 방에서 지내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할머니~>하며 방에 불쑥 간다. 예전 같으면, 두 사람 대화하니, 가지말라 뭐해라 막을텐데, 요즘은 막지 않는다. 그게 아이다운 거니까. 괜한 어른싸움에 아이들 등만 터질수는 없다. 그랬더니 두 분의 대화는 종료되었고, 이내 남편은 어머님과는 어색하지만 웃는 낯으로 나온다.
그러고는 우리 방에 들어와 아이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이혼을 생각하던 나는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혼자 생각하길, 우리 부부는 하나의 생각으로 일치하지는 않는게 분명하나, 각각의 세계가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어머님과 소통도 하고 배려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이 두 사람이 그냥 한없이 애같아서 뭘해도 성에 안차고, 뭔가 엉성해서 불안하고, 무엇이든지 궁금하고 알고 싶은데, 막상 의지할라치면 이제는 다 큰 자식이니 부담스러운 거구나 싶었다.(자꾸 도와준다고 하시는건 엉성해보여서 불안해보여서 쟤네 하겠나 싶어서 그러시는거다.)
사실, 나는 남편과 결혼생활 하면서 남편이 나의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무엇이든 문제 해결방법 면이 나와 다르고, 사고도 다르고, 양육방식도 다르고, 소통도 다르다. 그런데 오늘은 내 고질병을 순간적으로 치료했다. 남편이 어머님을 방어하며 이야기나누는 찰나를 보며 안도한 것이다. 나란 인간도 참. 어머님의 <그것이 알고싶다>를 그냥 적당히 방어한 남편이 그렇게 세상 좋아보일수 없다. 어머님을 세상 가장 귀한 사람처럼 모시고 살면서, 그 정도 방어에 내 몸의 반응이 멈추게 하다니.
직장인들 유행이 사직서 품에 안고, 직장 출근한다고 했다. 매일매일 꾸역꾸역. 나는 그렇게 진실된 직장인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혼서류를 잘 작성해서 품에 간직하면, 오히려 가정생활을 더 충실히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캐나다 전통은 30세쯤 되면 유서를 쓴다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 돌아봐야지. 생각해봐야지. 홧김에 서류를 던지려고, 품에 넣고 다니는 건 아닐거다. 아마 나의 경우나 그들의 경우는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서류까지 작성해서 품에 꽂았을거다. 각오를 다지며 또 살고 버텨내려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고, 남 탓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고,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그만하고 싶고, 나 자신도 그만 괴롭히고 싶은. 바로 그때. 그 찰나에 해방감을 느낀다. 순간적으로 모든걸 포기할때.(집에서는 바로 그때가 아이들이 할머니 방에 들어가는 걸 막지 않을 때였고, 오빠가 어머님이랑 재정얘기를 나눌때 뭔가 큰소리 날까 조바심 내는걸 포기하고 될대로 되라 생각할 때 등이다.)
순간의 해방감을 통해 알 수 있는건.... 아무도 나를 가두지 않았다였다. 그게 더 슬픈 현실이었다. 난 도대체 뭘 이토록 두려워하는건가? 왜 이토록 눈치보며 조바심을 내며 전전긍긍하며 사는건가? 가슴의 통증이 왜 나타나는가? 보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의 이면은 볼 수 없나? 내가 우리 가족에 대해 정확히 보고 판단하는건 맞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