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이후의 생각(2023.1.31)
설날 이후의 생각들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고맙고 무겁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 해줘서 고맙고, 다 큰 자식임에도 아직도 방황 중이라 미안하고, 제 역할 톡톡히 해내는 자식이 못된 것 같아 괜히 죄스럽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저 내 자식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는 게 부모마음이던데, 늙은 부모 앞에서 나는 아직도 어린애다. 마음도 생각도.
설 전에 엄마집에 갔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나는 엄마가 불편하다. 인생의 한 과정이겠거니.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을 것을. 나는 또 생각이 삐딱선을 탄다. 밤 11시에 식당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엄마 보니 한숨이 나고, 그런 엄마가 안타까운데 나라고 엄마한테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놈의 돈이 문제다 또. 생각이 이렇게 튄다.
이상한 거리감.
엄마와 나는 그랬다. 늘. 가족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유독 예민한 건지. 그렇다. 가족이 무겁다. 별 수 없이 책임져야 하는 이 무거운 관계들이 무겁다. 엄마야 책임감 때문에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뭐 아빠도 엄마랑 이혼했음에도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책임지셨던 것 같긴 하다. 여하튼 나는 친정집에 가면,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은 아닌데, 뭔가 낯설었다. 엄마의 모습이 새삼 낯설고, 엄마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색함이 흘렀다.
내가 그렇다면 엄마도 그렇겠지.
요즘 빠진 <사랑의 이해>를 보며 엄마와 분위기가 풀린 듯한데, 부모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언뜻 내비치면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나도 모르게 내비치게 되는 속내.
<부모라면 저래야지> 엄마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죄책감을 지어준 건 아닌가. 늘 이렇게 마음에 말이 남고 만다. 입방정을 떨고 괴로워진다.
친정엄마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났다. 65만 원을 지불하고 새 보일러로 바꿔드렸더니, 기어이 통장에 65만 원을 보내주셨다. 부모란 이런 건가. 감사하는 마음보다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돈을 받을 나이가 아니라, 돈을 드릴 나이라서 부모님이 주시는 1원 한 푼도 이제는 나에게 마음의 빚 같이 느껴진다. 아무리 어려운 세대라 부모의 언덕 없이는 힘들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도, 자식도 부모를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참... 나란 인간도 까다롭다.
서울에 사시는 이모댁에 갔었다. 이모에게도 나는 빚진 애다. 뭐 우리 가정환경 덕분에 빚 안진 친척집이 없을 정도인데, 실제 돈을 빌렸다기보다는 마음의 빚이 참 많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기도 했었으니 친척들 눈에는 나와 우리 가족은 안쓰러운 쪽에 가깝다. 그래서 늘 친척들 만나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아무리 내 마음이 그렇다 해도 인사드리는 게 도리 같아 찾아뵈었다. 만나 뵈니 이모는 여전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집안에서의 세력이 약해지신 것 같았다. 큰소리치던 이모는 없고, 자식 눈치보기 바쁘다. 30대가 되어가는 자식들이 이모를 가르치고 있었다. 핸드폰에서 뭐가 잘 안 되는 문제들에 대해. 세월이 그렇게 흘러버렸다.
인생이 덧없다.라는 게 새삼 느껴지는 설이었다.
가족들 그렇게 미워했는데, 참 신기한 게 그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밉구나 싶다. 언젠가 나도 에너지가 바닥나면 그마저도 힘들겠구나 싶었다. 이상한 거리감, 미움, 연민, 원망, 안쓰러움, 사랑, 동정 등 나는 가족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매번 느끼는 것 같다. 그냥 요즘은 너무 매 순간 마음을 다 쏟아서 가족을 생각하지 말자고 여기고, 거리를 둔다. 그래야 내가 숨통이 틔이고 언젠가 진정으로 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싶었다. 언제고 엄마를 이해를 넘어 용서?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제서야 내가 자유해질까 잠깐 생각해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