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찬양이 나는 슬프다(2023.2.3)

옳은 일에 대하여

by 소국

행복하면 좋겠지. 그런데 나는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찰나의 행복을 가져본적은 있겠지만 영원한 행복은 없었다. 나는 인생은 커다란 슬픔을 머금은 채 괜찮은 척 연기하는 듯 하다고 늘 생각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고민없는 사람, 걱정없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 괜찮을 지 모르겠지만, 듣는 나는 괜찮지 않았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늘 슬프고, 나를 생각하면 답이 없어서 더 슬퍼졌다. 세상을 바라보면 엉망진창 같아 더 슬펐다. 슬픔이 도처에 깔려있어서 사실 하루라도 덜 슬프게 살려고 애썼던 것 같다.(우울증 환자 맞을수도 있다.)


그런데 어제 큰아이가 내 마음을 알아차린듯 <엄마 왜 이렇게 조용해>한다. 9살 난 아이는 기가 막히게 내 마음을 읽어낸다. 우울도 틈이 있어야 우울하지. 조용해?를 다른 말로 해석하면, <엄마가 어느때와 좀 다르다>라고 자기 딴에는 말로 표현한 것이리라. 생각이 많아진 엄마의 우울감이 느껴졌나보다.


뭐 그렇게 심각하게들 사냐고, 세상 고민 니가 다 하고 사냐고들 한다. 그런데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 부조리한 세상과 나 자신의 모순과 한치에 양보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늘 괴로운 법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게 곧 나에게, 세상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결과로 돌아온다. 믿는 사람의 선택은 나는 생명이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순간의 생각도 선택도 무거워진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정말 나는 생각은 많았지만 결국엔 사람들의 말과 상황과 힘과 권력에 무서워 잘못된 선택을 많이 했고, 이후에 나의 태도는 그 모든 책임을 부모 탓,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바빴다.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그렇게 나를 다독이기 바빴다. 그런데 바뀌는 건 하나 없다. 내 삶도 가족도 세상도.


다시는 그러고 살고 싶지 않아서 괴로웠다. 돈과 힘과 권력 등에 옳은 것을 흐리게 만들고,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사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40년 가까이 부끄럽게 살면 된 거 아닌가. 마음이라도. 생각이라도 깨끗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뭔가 대단한것을 이루려고 하는 생각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겁한 부모로 살고 싶지 않아서 하는 생각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하여(202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