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의 본질은 무엇일까?(2023.3.5)

아이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떨어뜨려 놓기로 결정한다.

by 소국

회피형 인간인 나는 매 순간 회피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책임이라는 무게감이 나를 더 옥죄어 온다. 뒤돌아보니 딱히 책임진 것도 없는데, 굉장히 매 순간순간을 무겁게 살았던 것 같다. 인생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딱히 곱지 않아서, 매번 억울함과 수치심을 느끼며 견뎌온 것이다. 사는 게 가히 행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산들 뭐 달라지는 게 있을까? 생각하며 소망이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생관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었다. 이게 양육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부모의 세계관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했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했고, 가족에 대한 관점도 달라져야 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렸으니까. 그런데 늘 실패하는 기분이 들고, 그런 하루를 쌓아가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래도 아이가 어렸을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제는 뭐가 이상한지, 관계 속에 나의 태도나 생각이 뭐가 이상한지 조금씩 깨닫기 때문이다.


오늘 아이와의 대화 속에 나의 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내일 준비물을 챙기는데 준비물을 챙기지 않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다. 이것부터가 이상하다. 아이가 준비물을 빠뜨리면 아이 본인의 책임인데, 왜 내가 먼저 앞서서 걱정하고 준비물을 챙기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는 것인가. 다그치고 나서야 내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이게 내 일인가?를 스스로에게 따지고 물었을 때, 분명히 아니다. 그러면 굳이 내가 앞서 갈 필요가 없고, 결국 이 아이에게 다그칠 필요가 없고 화가 날 이유가 없다. 챙기면 본인에게 좋겠지만, 챙기지 않아서 그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될 일이 생겨도 괜찮다면 뭐 괜찮은 거다. 혼자 깨달은 거다.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내일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한다. 준비물에 대해 언급은 하겠지만 감정은 품지 않겠다. 그건 나를 괴롭게 하는 일이고, 양육을 무겁게 하는 일이다.


방금도 뭔가 이상했다.


말해도 듣지 않는 아이. 이건 분명 나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나도 대화를 한 게 아니라 일방적인 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있었다. 평소 아이가 말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몇 시 몇 분 몇 초?? 오 예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지 끝도 없이 따지고 들고, 놀리는 말투다.

<엄마는 그런 식의 말투 너무 싫어. 그런데 네가 알면서 더 쓰는 건 더 싫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평소 같으면 이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부드럽게 아니면 돌려서 표현했거나, 아니면 <하지 마> 정도로 마무리되었을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나의 감정을 아이에게 표현했다. 그리고 정말 싫다고 정색했다. <너네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싫다고 했잖아. 그러면 그런 말을 안 해야지.>라고 했다. 그런데 정확하게 내 마음을 아이에게 표현하고 나니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다. 나는 싫었다. 애들 사이에서 어떤 말로 자기네들끼리 얘기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듣기 싫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네 말로 인해 나는 기분이 상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의 감정과 기분까지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내 마음이 후련했다.


나는 계속 연습을 해 볼 작정이다.


너와 내가 가족이지만, 엄연히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과

나 스스로도 아이의 모든 것, 아이 인생의 모든 것(감정, 기분, 스스로 책임질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려하지 않겠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 것이다. 가족은 그저 더불어 살뿐, 의존하거나 서로를 희생하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가족은 서로 희생하고 의존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인생 노선을 살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이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게 정말 쉽지 않다. 원가족도 희생하고 의존하며 살았고, 지금도 그런 모습이 나에게도 많고, 가족 내에도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누군가를 의존하는 게 당연하게 되는 그런 사람,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인생길이지만, 결국 자기 짐은 자기가 져야 하고 내가 대신 무얼 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양육에 대해서도 키 포인트는 결국 내가 대신 무얼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를 깨닫는 거였나 보다. 정과 대비보다는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에서의 타협을 찾고 싶다. 나는 아마 아이를 영원히 이해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연습할 것이다. 계속해서. 너와 나의 감정분리. 의무분리. 마음분리. 생각분리. 역할분리. 인생분리. 책임분리. 너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오늘도, 중요한 사실은 결국 사랑한다는 거다.

기어이 힘든 여정을 기꺼이 걸어가게 할 만큼 소중하다는 거다. 그래서 열심히 살 거다. 아마도 사랑하는 네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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