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의 가족캠프(2023.2.25)
대안교육의 가치는 무엇일까?
사람 많은 곳, 정형화된 행사,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곳,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고 환대해야 하는 상황들, 이미 잔뜩 긴장해서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맥이 풀린다. 머리로는 굳이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생각하지만, (학교 특성상 (마음속으로는 무슨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실수가 용납되고, 서로서로 많이 도와줄 거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미 몸은 잔뜩 긴장되어 있다.
누구든지 에너지 넘치고 밝은 사람을 좋아하지, 나처럼 텐션이 낮고 생각이 많고 회의적인 사람은 기피하게 된다. 이유는 안 그래도 살기 힘든데, 굳이 에너지 뺏기고 싶지 않아서 일거라고 추측해 본다. 텐션... 올리고 싶다만, 사실 피곤했다. 행사 시작부터.
대안학교의 특성상 잦은 사회적 모임이 많다. 이게 나랑 맞지 않다. 학부모 모임. 각종 학교 행사. 그리고 원치 않는 책임과 의무가 존재한다. 사람이 자유로우려면 내 개인적으로는 <지 기질대로 지 맘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내 몸은 정말 성실하게 역할 수행하는 소처럼 살고 있다. 머리와 몸이 늘 따로 움직이는 인생을 꾸역꾸역 살다 보니, 이미 내 몸은 행사장 한가운데. 봉사까지 하고 있다. 이미 내 심신의 한계를 느끼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름의 배려가 묻어나는 웃음을 짓는다. 마음은 없으면서.
참 나는 왜 이렇게 사나. 나랑 맞지 않는 옷을 계속 껴입고 꾸역꾸역 살아낸다.
오늘은 기나긴 코로나로 가족캠프(말은 캠프지만, 기도하고 강의 듣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자리)를 학교 입학하고 처음 열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갖는 자리이니만큼 선생님들이 더 뿌듯하신 것 같았다. 나는 캠프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내가 오늘의 강의를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냉철한 대안교육의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하는 바를 동시에 듣다 보니, 참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뭘까?
이걸 아이들에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할까? 사실 설명자체가 어려운 부분인데, 머리로 이해가 불가능하니까 그렇다고 생각이 드는데, 굳이 설명하자면 나는 안개가 뿌연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안개 때문에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데, 걷다 보면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앞에 무엇이 있는지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바로 앞의 것은 보이지만, 저 멀리의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지나온 길도 저 멀리는 보이지 않고, 바로 뒤는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걷는 것. 그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걷는 동안은 옳은 방향인지 틀린 방향인지 나도 모른다. 그게 인간의 한계고, 내가 옳다 여겨서 걸어갔어도 그쪽 방향이 아닐 수 있고, 장애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하나님이 있을 거라고 믿고 걷는 거다. 뿌연 안갯속을. 이게 인생이다.
대안학교는 이런 믿음이 필요했다. 이런 교육이 아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아무도 모른다. 뿌연 안개지만 한발 한발 걷는 것. 입시가 목표인 양육을 하고 있다면, 1년에 800만 원 가까이 내는 등록금이 아깝지 않도록 아이를 밀어붙여야 한다. 대안학교에서는 판을 깔아주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유는 한국의 교육 현실은 알지만, 입시와 성적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해서일 거다. 사실 이런 이유로 엄마들도 초등 저학년 때는 만족하며 보낸다. 그러다가 중등, 고등을 올라가며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는 것이다. 결국 입시를 쳐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나는 정말 이 대안학교를 보내며, 믿음이 필요했다. 이런 교육. 괜찮을까? 1년에 800만 원의 값어치가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무얼 기대하며 이런 교육을 아이에게 시키고 있는 걸까?
캠프가 끝나고 혼란스러운 마음과 함께 내가 정말 원하는 삶과 우리 아이가 살았으면 하는 삶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답이 아주 뚜렷하게 나왔다. <자기 주도적인 삶>이다. 이게 신앙적으로는 굉장히 어긋나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나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다.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에 기반한 순종을 원하신다. 절대 강요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자유 의지가 인간들에게 있는 거다. 사랑에 기반한 나의 의지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갑이고 내가 을이 되어, 을이 어쩔 수 없이 갑에게 엎드리는 격이 아니란 말이다.(그런 거 많이 해봤는데 하나님을 오해하는 거다. 그러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리라 생각된다.)그래서 이런 설명을 빼버린 기독교는 오해의 소지가 크다.
아직도 보수적이고 획일화되고 계층이 나뉘고 서열화가 심한 한국사회에서 무언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산다는. 소위 자기 주도적인 삶이라는 게 과연 쉬울까 싶다. 보수적인 집단이 한국 교회(지금의 한국교회는 막강한 파워와 권력이 생겨버렸다)라고 생각하는 나는 신앙도, 내 인생도 죽음 앞에선 결국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밖에 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찌 보면 남 눈치 보지 않고, 어떤 집단의식에 묻히지 않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건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 최소한의 예의 같다. 결국 나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얼마 많이 살지 않아 모르지만,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이겨낼 힘은 결국 살아내는 것밖에 없었다. 울고 통곡하고 괴로워하며 살아내는 것.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섰던 것 같다. 종교적인 열심과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고 그냥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한다.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령 부리지 말고. 그러면 자연히 힘이 생긴다.
우리 아이가 대안학교에서의 어려움들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또 다른 결핍을 학교 내에서, 혹은 졸업 후 사회 속에서 맞이할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격려하고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다.(과연 될는지는 의문이다.) 그 아이가 맞이하는 학교 내 세상과 학교 밖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나름대로 소화가 잘되고 성장의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꼭 학교도 성적 좋은 인재 말고 근본이 튼튼한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가 되어 사회 곳곳에서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도모하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