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는 방관이 있었다고 판단돼요(23.2.10)

방관이었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by 소국

방관.


우리 학교의 장애아동. 실장님. 우리 가족이 나는 이 단어 안에 다 떠오른다. 방관했다.


그러니까. 나의 최초의 방관을 떠올려볼까?


가정폭력이 난무한 집안에서 자랐다. 엄마가 아빠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을 때 내가 방관했지. 아빠의 폭력 속에 엄마가 울부짖을 때 어린 나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 아빠가 무서웠고, 보복이 두려웠다. 엄마는 두려움에 늘 휩싸여 있었고, 다른 친척들은 엄마의 사정을 알지만, 결국 본인이 본인의 삶을 선택해야 했다. 친척들이 도와줄 수 있는 건 뭐 같이 울어주거나 욕해주거나 그 정도였다. 방관은 밤마다 늘 계속되었다. 엄마가 쇠파이프로 아빠한테 밤새 맞아도 방관했었으니까.


나는 엄마도 방관했는데 아빠도 방관했다. 그렇게 폭력적이던 아빠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혈육이라는 이유에서 일까. 무슨 책임감에 나는 아빠를 돌본 건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아빠가 췌장암 말기 판정이라고 남동생을 통해 전해 들었을 때 그렇게 미운 아빠임에도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내가 해야지 라는 생각과 정말 미운 감정이 가득 찼던 것 같다. 이미 엄마와는 이혼상태이므로 자식들이 아픈 아빠를 돌보아야 했다. 그런데 병간호랄 게 없는 게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아빠를 짐처럼 여겼구나>를 깨달았다. 아빠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병간호를 기계적으로 하게 되고, 마음을 담아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빠와 나의 사이가 죽음이 눈앞에 있어도 빠르게 가까워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화해하기 좋은 시기임에도 우리 부녀는 화해든 속마음을 얘기하든 뭐 이런 애틋함을 나누지 못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드라마 같은 일은 없었고, 그저 병간호로 지친 일상을 그저 꾸역꾸역 살았던 나만 남았다. 내 감정과 내 생각에만 집착해서 아픈 아빠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 최근의 방관은 뭐였을까?


실장님이 모욕을 당하신 일이 있었다.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차장님이 어린 실장님을 정말 무시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 상황에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 다 듣고 있었고, 눈이 그쪽을 향한 게 아니지만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런데 이런 모욕이 한 번이 아니었다. 모욕이 계속 쌓였다. 관장님으로부터 차장님으로부터. 고함소리가 난무했다. 실장님의 태도 때문에 상대방이 더 언성을 높였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하는 행동으로는 좋지 않음에도 그런 모욕을 여러 번 당하셨다. 그러니 윗사람임에도 자신의 권위가 전혀 없구나를 느끼며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이때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고 이후에도 실장님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 방관을 얘기해 볼까?


대안학교 일이다. 대안학교 2년 차 학부모로서, 이 학교가 장애아동과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입학했다. 부모란 존재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끔찍할 정도로 이기적인 나는 장애아동과 함께 생활하는 게 우리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애아동이 아니라 우리 아이 발달에 오히려 초점이 있었다. 내 아이 중심적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장애 아동은 떠났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장애 아동도 그 엄마도 이 학교를 다니면서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외로운 순간이 많았고 누구도 이 아동과 엄마를 전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도하겠다는 말이 기대를 하게 만들고, 이런 학교의 문화 속에서 장애아동과 학부모가 버틴 것이다. 그랬더니 너무 외롭고 견딜 수 없을 만큼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일반학교는 더하면 더하지 라는 생각으로, 그래도 여기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틴 것이다. 속사정을 들어줄 이를 만나기도 힘든 게 일반학교일 거라 생각하며 버티다가 학교의 입장과 태도, 아이들 간의 관계, 학부모 간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생각할 때 일말의 미련이 없이 떠나게 된 것이다. 한 엄마가 장애 아동의 엄마와 친밀하게 교류하면서 나에게 슬쩍하는 말이 <그런데 저는 방관이 있었다고 판단돼요>하는 것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선생님들도 지쳐서 떠났다.


방관.


일종의 방어태세일 테다. 나도 두려운데 어쩌지 못하니,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것일 테다. 아님 알면서도 굳이 나서서 나를 손해 보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일 테다. 무언가를 잃어버릴까 봐.


방관이 불러일으키는 대참사는 외로움이다.


나는 엄마를 외롭게 했고, 아픈 아빠를 외롭게 했다. 실장님을 외롭게 했고, 장애아동과 그 엄마를 외롭게 했다. 듣기는 들었는데,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니 계산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내가 피해볼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모두 이제 내 곁에 없다.


방관은 끝이 없다. 나 자신도 방관하는 게 참 쉽다. 걱정된다. 가족들이 나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될까 봐. 방관이 습관이 되지 않길 바란다. 매번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두렵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삶도 2번 정도 살아서 2번째는 잘 사는 방법을 알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힘들면 묵묵히 살아내는 법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아프고 지치고 괴로운 순간을 자주 만나야 했다. 의연하고 두렵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그 순간 재치 있고 지혜로웠으면 좋겠는데, 돌아보면 나는 참 별 볼 일 없었다. 드라마 같은 일이 없어서 삶이 무거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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