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쓸까 고민했는데 남편이 글감을 준다.(23.3.7)

나의 지랄이 맥스일 때

by 소국

날씨가 정말 좋은 하루였다.


나의 경우는 뭔가 해결되지 않은 채 답답한 뭔가가 계속 마음에 응어리로 있으면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이라도 빨리 마무리 지으려 한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경제문제, 가족 관계 문제, 자녀 양육 문제 등이 어느 날은 그냥 너무 무겁게 다가와서, 마음까지 무거워질 때가 있다. 그러면 당장 해야 할 일들이나 찾아 하는 편이다.


3월 9일은 실업 인정받는 날. 실업급여를 타는 명분도 있지만, 실제로도 취업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계속해서 지원서를 넣어야 한다. 월급 200만 원 정도의 일을 구해서 한다고 하지만, 나이, 경력 등을 생각하면 한없이 사회인으로 직장인으로는 쪼그라든다. 꼴에 자존심 부린다고 할까 봐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하면 좋으련만. 자존심이 아니라, 그렇게 날 보는 그 인간들이 꼴 보기 싫어 안 한다. 이러니 나는 어딜 가도 환영받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나를 봐도 까다로우니.


40이 가까운 나이에 앞으로 걱정에 마음은 무거운데, 내 마음과 달리 날씨가 너무 화창했다.


볕을 쬐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음과 머리가 무거운 건 여전한 채로 성경책을 폈다. 이 와중에 통독을 하겠다고 질러놓고 산더미처럼 숙제까지 쌓이니, 정말 하기 싫었다. 아이들 하교 전까지 나는 통독을 밀린 걸 다 못 끝내더라도 목표치는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집중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한숨이 나오고, 그냥 그대로 나왔다.


첫째 아이를 픽업했는데, 애가 말을 하다가 만다. 제일 싫어하는 뉘앙스다. 내 눈치 보는 거 정말 싫다. 그래서 네가 말하려는 게 뭐였냐고 물어보니 역시 친구랑 노는 거였다. 5시에 놀기로 자기네들끼리 약속을 했단다. 나는 거절했다. 엄마가 시간이 안된다. 다음번에 만나 노는 걸로 하자. 생각보다 큰 고집을 부리지 않고 차에 탔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잡다한 일들을 생각했다. 주유를 해야 하고, 저녁 장을 봐야 하고, 둘째를 픽업해야 한다.


주유 후, 둘째 픽업, 장까지 야무지게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거리는 나에게 늘 고민이다. 식구들이 한데 모이는데 그 저녁 먹거리가 꼭 나의 일인 양 나만 바라보고 기다리는 꼴이 너무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오늘은 만두전골이다. 거하게 차려서 먹었다. 남편은 우리가 식사를 마친 후 귀가하여 허겁지겁 먹는다. 늘 허기진 상태로 집에 오니 과하게 저녁을 먹게 된다. 적어도 이 시간까지 우리는 괜찮았다. 애들 픽업부터(4시) 저녁식사 마치는 시간까지(7시 30분?) 나는 쉬지 않았다. 힘들었다.


남편도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식탁에 앉아 낄낄거리며 티브이를 본다. 나도 안다. 힘든 거. 그래서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나는 애들을 티브이를 보여준다. 나도 티브이 보려고. 아이들은 식사 이후 거의 2시간 넘게 티브이 봤다.


8시 30분쯤 되면 우리는 정리하고 잘 준비를 하는데, 큰아이가 티브이를 끄지 않는다. 스스로. 그래서 꼭 끌 때는 좋지 않은 모양새가 된다. 그런데 남편이 방에 들어오더니 나는 누워 티브이보고, 아이들은 본인이 보지 말라고 한 티브이를 봐서 아이들에게 한마디 한다.


<저거 아빠가 보지 말라고 한 거 아니야? 왜 보는 거야? 아빠랑 어제 약속했는데 이렇게 안 지킬 거면 앞으로 티브이 아예 보지 마>


나는 그 사이 이불정리를 하고 이불을 편다. 아이를 따로 방에 부르더니, 숙제는 했냐 준비물은 챙겼냐 등 따져가며 뭐라고 한 소리 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나더러 와서는 이렇게 말을 한다.


<아니 애가 숙제도 안 하고 준비물도 안 챙겼는데 뭐 했어?>


나는 그냥 화났다.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아니 화내는 게 아니라 얘기하는 거잖아. 당신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블라블라. 이런 말도 못 하나?>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리고 화가 나니 큰 애한테도 말이 세게 나온다.


<준비물도 숙제도 네가 알아서 하고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리고 지각도 네가 알아서 챙겨. 그리고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야 말을 듣는 거 싫지 않냐? 싸우는 거 너무 싫다>


라고 말해버렸다. 모든 이유가 자기가 된 듯 했을까?


남편에게 왜 화가 났나. 생각해 봤다. 양육이 어쩔 수 없이 주양육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주양육자도 사람이니 의무가 무겁다. 그러면 무거운 마음으로 나름의 노력을 하는데, 보조하는 양육자가 말을 저렇게 하면 나의 노력을 같잖게 여기는 것 같다. 그냥 하는 말이면 그냥 안 하면 좋겠다. 대한민국에 어느 애 키우는 엄마가 애만 키우나. 집안의 사소한 일부터 시댁, 친정일의 사소한 일,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해야 하면 그것도. 애만 편안하게 보는 엄마 많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준비물, 숙제 얘기를 꼭 꼬집어야 할까. 나는 그냥 화가 났다. 엄청 노력하며 살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화를 냈다. 그랬더니 그 순간은 속이 후련했다.


엄마 아빠의 싸움 덕에 눈치 보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요즘 근래 들어서는 남편도 나도 참지 않는다. 그냥 죽자고 싸우자 편이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억지 평화보다는 싸움이 더 자연스러울 때가 있는 법이니. 이제는 두 발 뻗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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