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력단절 친구가 최종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멋들어진 글 대신 직설적이고 낯 뜨거운 글.(23.3.14)
도저히 집중이 안된다. 뭘 집중해야 하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지원서를 3월 내내 써야 하고, 연락이 오면 감사하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슬퍼하겠지. 성경통독모임에서 성경을 읽는데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전도서가 그나마 나를 위로해 줬다. 인생살이의 참지혜가 전도서에 가득 담긴 것 같다. 잡다한 일의 갈래가 많은 주부의 삶이 언제나 그렇듯 숨이 헉헉 찬다. 애들 픽업,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매일 할 일이 넘쳐나는데도 나는 앞으로 30년은 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여기에 플러스 바깥일도 해야 한다. 생각하니 그냥 무기력해진다. 형편이 나아지기 위해 뛰어든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현재의 형편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원서도 쓰고 무엇이라도 해보려는 것이다.
참 말 많고 말이 좋다.
부창부수라고 남편이랑 말을 하는데, 꼭 나랑 닮았다. 그냥 말만 잘한다. 남편의 말이 어이가 없다. 이제는 부부사이에 위로가 없다. 그저 뻔뻔함만 가득하다. 부엌에서 밥을 담으며 <나는 언제고 꼭 혼자 살 거야. 따라오지 마>라고 했더니, <말만 해줘. 내가 가서 브런치처럼 해주고, 당신은 누워서 사색만 해>한다. 부엌을 서성거리며 얘기하는 남편 꼴이 참 얄밉다. <난 왜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꾸역꾸역 할까> 그러자, 그 얄미운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게 대단한 거야. 나는 하기 싫으면 안 하잖아. 대부분 나이 들면 더 심해져.> 말이냐 방귀냐.
그 와중에 경력단절 된 친구가 파트타임으로 직장보육시설 보조교사 합격이 되었는데, 2군데가 되었다고 어디로 갈지 고민이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엄청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축하할 일이니까. 그런데 모든 대화가 종료 후에는 곧 내 처지가 눈에 들어왔다. 돼도 걱정. 안돼도 걱정인 채로 지원서도 미적지근하게 쓰는 나의 모습. 늘 자신이 없는 나의 모습이 선명하고 날카롭게 나를 할퀴는 느낌이 들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가 입에 늘 중얼거리는 것이 있다. 힘이 나는 성경말씀이면 오죽 좋으련만. 나도 모르게 아 왜 이렇게 자신이 없지? 다. 양육을 잘할 자신. 앞으로의 내 삶을 당당히 책임질 자신. 일에 대해 방향을 가지고 잘 해낼 자신. 기타 등등 모든 게 자신이 없다.
젠장. 그런데 오늘 도서관에서 성경을 펴고 혼자 읽다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남의 브런치 글을 훔쳐보는데, 나의 자신감은 지하 10층정도까지 내려가버렸다.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은 거야.
시작은 쓰는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잘 쓰고 싶은 욕심을 내고 있구나. 이쯤 되면 내 욕망이 사라지면 좋겠다. 바라는 게 많아서 자기 스스로가 괴롭구나 싶어서. 아이들이 쑥쑥 커간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안 차려 진다.
p.s: 경력단절 친구에게 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언니, 나는 뒤돌아보면 나의 능력보다 남들이 나를 더 좋게 봐준 것 같아. 그래서 나를 뽑아주고 써준 것 같은데. 대부분 그렇게 운이 좋게 들어갔어> 진심이다. 내 능력을 겸손으로 포장하는 게 아니라, 뒤돌아보니 정말 그랬다.(능력자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래서 내가 지금을 견딘다. 지원서 몇 장 썼다고 낙망하리. 날 좋게 봐주는 사람이 날 뽑아주겠지. 그냥 열심히 닥치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