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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Apr 03. 2023

기억하고 싶은 사건(2023.3.29)

혼자였구나 싶을 때에도 혼자가 아니었단 사실

일단, 나는 종교적 힘을 믿는 게 아니다. 종교는 아무 힘이 없다고 오히려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기독교에 얼마나 회의적인 사람이었는지 우리 엄마가 잘 안다. 그런데 실존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기독교를 접근하는 게 좀 달라진다.


인생에 대해 낙관적이기보다 회의적이고 부정적이다. 그나마 하나님을 믿으며, 하루하루 소망을 갖고 살게 되었을 뿐. 어린 시절의 경험이 나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책 <한 달란트>와 기도모임에 만난 한 분을 통해 기억해두고 싶은 게 있어서 일기로 남긴다.


큰 아이 학교에 기도모임이 매주 수요일 오전에 있다. 3월 마지막주는 분주했다.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고, 성경통독을 마저 해야 하고. 나름 내 계획대로 계속적으로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학교 기도모임이 있단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몇 번 참석했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는 하지 못했다. 번뜩 이번 기도모임에는 참석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부지런히 준비했다.


수요일. 아침에 학교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불도 켜지지 않았다. 10분 전인데도 아무도 없어서 놀랐다. 일단 도착해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도착했고. 그다음으로 아는 얼굴이 도착했다. 반가웠다. 그러면서 얼굴을 모르는 분과 통성명을 하는데, 나에 대해 너무나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문제는 나는 전혀 그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분이 나의 친정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다고. 친정아버지 암투병 중이었던 그 시절을 얘기하시며 기도했노라고 얘기하시고, 내 아이 이름을 기억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정말 실로 놀랐다. 3년 전 일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계셔서.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다. 왜냐하면 친정아버지의 암투병 병간호는 철저하게 외로웠다. 코로나 덕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보호자 1명 외에는 어려웠고, 나는 불편한 관계 속의 친정아버지를 매일 대면해야 했는데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들이 지금도 나를 괴롭힐 정도로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과거의 생각을 뒤바뀌게 해주고 싶으셨나 보다. 나는 외롭고 힘들다 생각했던 시절의 기억인데, 중보기도자가 있었다.라는 게 좀 놀랐다. 보통은 기도를 해놓고도 잊어버리실 만 한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내 아이의 이름, 상황, 기도제목까지 기억하시니.. 참 이건.. 그냥 하나님이 날 향해 대놓고 위로의 목적으로 날 부르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것들을 내가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한 달란트>의 부부가 간증하는 인생 이야기처럼. 뭔가 대단한 걸 이룬 내 삶은 아니지만, 내 인생 전반에 하나님이 미친 손길이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세심하다. 그래서 위안이 되고, 풍선처럼 부풀어진 허영 같은 것이 빠지고 다시 겸허해진다. 결국 내가 할 수 있어서 뭔가를 한 건 아니었다. 도움의 손길이 분명 존재했다. 현장에 실제적 도움이 없었을지라도 누군가는 기도했구나를 절감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도 누군가가 절박하게 기도했을 가능성도 크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깊이 감동을 받고, 다시 나도 나 말고 타인을 위해 기도하러 기도회에 가려고 한다. 그게 어쩌면 나 살고 타인도 사는 길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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