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싸웠다._23.9.22

한두 번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쩐지 잘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by 소국

어머님이랑 살다 보면 싸우게 된다. 처음에는 다 어머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문제가 많은가 보다. 생각이 든다. 남편이랑 싸우고, 어머님이랑 싸우고, 맨날 싸움만 하니 미칠 노릇이다.


사람 하나 보면 열을 안다. 이렇게 단정 짓는 말 싫어하고, 혐오하는데 결국 나에게도 이런 자동적인 사고가 흐른다. 속상하다.


어머님이 밭일을 마치고 들어와 기가 빠진 얼굴로 말씀하신다. <어멈아, 열무가 있는데.. 그거 같이 뭐 할까?>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뉘앙스에 말이었다. 나는 또 발끈했다. 여름 내내 음식 했다. 오이소박이 담고, 동치미 담고.. 문제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쉴 새 없이 가져오시는 야채들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한 것이다. 이게 문제다. 하고 싶을 때 뭔가를 하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안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야채는 썩어버린다. 그래서 누구 주자고 하면, 어머님 눈치가 보인다. 그러면 어머님이 좀 알아서 야채를 줄여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는 땅을 놀릴 수가 없단다. 그러면 혼자 하시지.. 밭의 큰 일은 같이 하지만, 소일거리들은 이미 혼자 다 하니 나물 다듬는 거, 김장하는 거, 뭐든 작은 거라도 같이 하자고 하시는 거다.


그래. 다 이해한다. 그런데 나도 짜증 나고 힘들었다.

바깥일 하는 어머님이 집안일만큼은 손대지 않도록 엄청 애를 썼다. 처음부터 집안일을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집안일의 경계가 없다 보니, 사실 어디까지 손대야 하는지 난감했다. 그런데 점차 어머님은 바깥일을 하시고, 나는 집안을 하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괜히 조심스러운 게 고부관계 아닌가? 부부사이도 마찬가지고..


그럼에도 몸과 마음, 정신이 지치는 날에는 별거 아닌 것에도 그냥 확 짜증이 난다.


열무... 가 문제였을까? 아니 그 뒤의 어머님 말씀이 문제다. <아니 열무가 있는데 그럼 그걸 버리냐. 어차피 놀고 있느니.. 김장하자는 거지> 하며 투덜대며 얘기하신다. 뭐 하자는 거지? 내가 놀고 있다고? 나는 유독 <내가 논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수용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제대로나 놀고 그런 말 들으면 속이라도 편할 것 같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철저히 아이들 위주의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 데리고 무언가를 하는 게 쉼, 노는 것이라고 여겨지지지 않는다. 그냥 내 시간을 아이들에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오전에 집안일을 하고, 1~2시간 자고, 출근한다. 오전에는 빨래, 청소, 반찬거리 만들어놓고, 좀 쉬었다가 나가는 거다. 이런 내가 노는 건가? 내가 논 적이 없는데? 쉬어봤자 낮잠 자는 거? 그게 그렇게 매번 지적받을 일인가?


어머님한테 대꾸했다.

<어머님 배추김치 먹으면 되잖아요 왜 매번 김장이에요~~ 있는 거 먹으면 되지.. 몸도 아프고.. 제가 놀았다고요? 참 너무하시네요>


나의 불평 가득한 말에 어머님은 바로 <야!! 하지 마하지 마 나 혼자 할라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하신다.


예전 같았으면 <어머님 열무 언제 뽑으러 갈까요?>했을 건데 대화 속에 내 심장박동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 아 내가 정말 스트레스받았구나. 그리고 나는 김장에 1도 관심이 없다는 걸 점차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어머님도 아시고, 어머님의 의도는 김장을 시키려는 게 아니라 그런 내가 조금이라도 배우고 관심 갖길 바라셨을 거다. (지금도 너무 이해하려 애쓴다)


아무튼 지금의 심정은 아픈 어머님을 돕는 게 며느리의 도리인 걸 알지만,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전혀 관계의 발전이 없다는 걸 느꼈다. 가족으로 살면서 싸우지 않고 살면 제일 좋겠지만, 평생 가족으로 살 거라면 싸우더라도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썩고, 말하고 나면 후회가 남았다.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관계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으로 사는 건 늘 진흙탕을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나와 상대가 다름을 인식하고 거리조절이 필요함을 자꾸 인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야 바로 보이고, 나라는 사람도 보인다. 어머님도 남편도 이런 나랑 살아서 얼마나 괴롭겠나. 그런 면에서 나 자신이 가족 탓을 하지 않고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찾으며 해나가는 게 참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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