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_23.12.19
무려 코타키나발루로.
곰팡이가 피는 벽과 찍찍 쥐가 매일 밤 천장을 내달리는 소리를 들으면, 밤에 잠이 안 온다. 이 거대한 한강뷰 집이지만,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집을 모조리 싹 다 갈아엎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지친다. 곰팡이를 치울 새도 없이 늘 지쳐버린다. 피로사회. 그야말로 피로사회에서 휴식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서 그런 건가? 아님 정신병의 일환인 건가?
남편이랑 말다툼하고 나면, 이성적으로는 <그래, 10년을 살아도 이 정도로 뭐가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체념적인 사고를 하다가(일상을 살아야 하니까) 몸과 마음이 우울에 사로잡힌다. 아주 따로 노는 국밥처럼 이성적으로 생각이 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제어가 되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마음이 전혀 다른 거다.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도 되지 않던 것이... 진정한 쌈닭이 되고 나면 알게 되는 것. <10년이 그냥 산 건 아니구나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부부가 분리되는 게 쉽지 않구나>를 체감하는 것이다.(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하나가 되긴 한다. 그래서 내 고민이 쓸데없어지지 않으려면... 실전에 강해져야 한다)
남편은 최근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이제야 그 생각이 들었냐. 등신아. 하고 싶지만, 그날은 참 나나 너나 우리 처지가 이렇게 처량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생각하길 아무것도 못했나?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는데, 내가 그런 인식을 또 심어준 건 아닌가?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는데.
남편의 말과 정반대로 우리는 정말 많은 시도를 했다. 젊었을 때는 오히려 하지 못할 과감한 시도들을 <아이가 있다><아이를 위해>라는 방패막으로 얼마나 돼먹지도 않는 시도를 했는지 모른다. <가족의 화목>을 빌미 삼아 우리는 다양하고 많은 시도를 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냐는 말이다. 일상을 열심히 사는 것도 시도 아니냐는 말이다. 결과가 없는 일상을 왜 열심히 사는데? 모이지 않는 돈을 그렇게 써대 가며, 한편으로는 왜 일하는데? 나 자신도 먹여 살려야 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이를 키우기 위함이 아닌가.
나는 아직도 할 말이 많다.
말 꼬락서니가 요따위여서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에 내가 너무 휘둘렸다. 당신이 코타키나발루를 상상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 있어서야.라고 말하고 싶었고, 나 자신에게는 네 남편은 너의 거울치료다. 어쩜 그렇게 똑같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저 말을 달고 살았던 지난 몇 년이 떠올랐기 때문에 이토록 말을 쏟아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