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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Dec 19. 2023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_23.12.19

불쌍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건 연민이 아니라 비하다.

분명히 알았다. 내 감정의 정체. 정확히 알았다. 난 줄곧 무시하려 애썼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부모 거나 선생님이거나 목사 거나 등등.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아빠가 나에게 존경받지 못했다. 뭐가 잘 안 되면 늘 <씨부럴~>이라고 지껄였다. 나는 이걸 지껄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아빠를 인간 이하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특정 대상(엄마)을 개 패듯 패고, 욕하고, 가정을 지키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는 늘 엄하고, 무한대로 잘해주다가도 기분 나쁘면 급발진이었다. 예측이 안 되는 사람이다. 늘 불안했다.


그런데 대물림이 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냐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아빠의 혈통이다. 나를 직면하려고 애쓰고, 살을 도려내듯 노력하지 않으면 나는 영락없는 아빠의 모습이 있다.


<힘들면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뭐 하나에 꽂혀서 기분이 나쁘면 모든 걸 극단적으로 생각한다.>


이미 자기 파괴적이고, 남을 함부로 할 여지가 충만하지 않은가? 그래서 늘 나의 고민은 내 안의 폭력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였다. 이건 나의 오래된 고민이다. 폭력은 <내가 억울할 때> 더 쉽게 드러났다.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 여길 때, 말투와 태도, 행동이 거칠어졌다. 억울함을 그렇게 자주 느끼는 것도 기준 때문일 거다. 기준과 시선이 철저히 '나'라는 사실을 늘 망각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안다고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 엄청 부단한 실전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 실생활에, 어떤 중요한 갈등시점에 내가 적용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일단 머릿속에 갈등이 없기를 바라고, 마침 일어났더라도 그 상황을 회피하려 애쓴다. 굳이 새롭게 시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은 괴롭지만 회피함으로 더 쉽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억울함 버튼을 시어머님이 눌렀다.


<밥도 안 해놓고 다니냐>


합가 첫날부터 이걸로 싸웠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드는 생각이 <여자가 밥 하는 사람>처럼 규정되는 것 같았다. 마음의 그릇이 크다면, 좀 여유 있다면, 맞장구도 치고 웃으며 넘어갈 일이다. 그리고 여자가 밥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만 있다면 상대가 뭐라든 뭐 그렇게 중요하랴. 그런데 여기서 시어머님이라는 입장과 며느리라는 입장. 그리고 어머님은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것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굳이 열받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 내가 일일이 굳이 열받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했던 과거 행적과 과거의 억울했던 감정, 상대는 권력자이기에 뭔가 속 시원하게 싸울 수 없다는 패배감에 대화를 해도 항상 브레이크가 걸리는 기분인 것이다.


그래서 내 방법은 회피 아님 침묵, 아님 무시였다.


말 같지도 않은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등산은 잘 다녀오셨어요?> 라며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내 노력을 아실리 없지만, (아실 수도 있다) 어머님은 등산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며느님을 모시고 사는 어머님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시어머님이 불만 1을 얘기하면, 나는 이때다 싶어 불만 10을 얘기했다. 그리고 나도 치사하게 과거사까지 들춰내며 말해봤다. 그런데 어머님은 기억도 못했다. 말한다고 억울함이 증발할까? 전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은 관계를 더 힘들게 했다. 안 그래도 신뢰가 없는 살얼음판의 관계가 더 위태로워질 뿐이다.


아마 어머님도 단지 말이 하고 싶었을 수 있다. 어머님은 평생 말을 못 배운 어른처럼 같은 말이라도 사람 기분 나쁘게 꼬아 말씀하시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이 나의 아빠랑도 똑같다. 은연중에 사람 떠보거나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모습이 너무 흡사하다. 어디만 다녀오면 험담이다. 듣기 싫다.(그때도 늘 대답은 하지만 마음에 철저한 담벼락을 치고 살았다. 벽이었다.)


그래서 나의 방법은 적당한 말만 하고, 무시였다. 개소리에 내가 반응하지 않아야 내 멘털을 잡고 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특히 가슴을 후벼 파는 멘트들이 있다. <여자가~><남자가~><자식이 부모를 모셔야지~><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어야지~>등등 셀 수 없이 많다.


어머님이 나랑 싸울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 너는 안 그러는 줄 아냐!!! 너도 그래!! 그리고 너 나 무시하잖아!!!>


마라맛 같은 현실이다. 분노폭발하면 못할 말 없다지만, 진즉에 헤어질 인연이 배우자의 어머니라니. 그런데 난 절대 환경 탓 남 탓하고 싶지 않다. 객관적 사실이 이렇고, 나는 나로서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살란다.


어머님은 오늘도 등산을 다녀오시고, 우거지를 들다가 발가락이 다치셨다. 하지만 나는 어머님이 나에게 했던  <밥을 해놓고 다녀야지>라는 말 때문에 힘들게 만드신 우거짓국을 감사하지 못했다. 나는 제일 안타까운 현실이 기껏 고생해서 자식들 주려고 애쓰는데,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존경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왜 소통이 안되는지 아는가?


우거짓국에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 감동과 은혜가 필요한가 보다. 메마른 것 같은 일상이 한순간 변하는 건  정말 은혜가 필요한 일이다. 사람 마음 어쩌지 못하고, 나한테 별 거 아닌 게 남한테 별 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상대는 모든 걸 느끼므로.


반드시 이어갈 인연 같은 건 없다. 그저 나는 배우자의 어머니로써 존중해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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