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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Jan 08. 2024

10년 전 나의 모습을 되새기며,_24.1.8

다시 현실을 마주한다.

나의 감정은 날마다 널을 뛴다. 그래서 감정을 믿을 수 없다. 감정이 널을 뛸 때는 쓴다.


남편에게 그동안 일기장에만 썼던 나의 마음? 근 10년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느끼는 내 감정에 대해 담담히 얘기했다. 예배가 끝나고 카페에 앉아, 우리 부부가 존경하는 목사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게 된 것이다.


<결혼생활 10년을 했는데, 역할로만 존재하는 느낌이야>


남편은 이 말에 흠칫 놀랐다. <꽤 위험한 생각인데..>라고 얘기했다.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오빠나 어머님 탓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좀 뭔가 나 나름 노력해도 더 이상 안되니까 자꾸 한계에 부딪히니까..>

<그러니까 서로 이런 말을 하면서 알아가는 거지. 10년을 같이 산다고 서로를 아는 건 아니야. 세월이 어떤 사람을 잘 안다고 증명하진 않아. 10년이 중요한 건 아니지. 1년이든. 1분이든. 시간이 중요한 것 같진 않아>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부부는 대화가 통하는 듯 통하지 않는 구석이 있는데, 그건 나의 못난 마음 때문이다. 늘 자신 없고, 그늘진 모습을 남편에게 들키면 아마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기적인 나의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사랑이라는 게 아프고 쓰라렸고 힘들었다. 이런 관계 불편하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억울하고 분했다. 나만 참는 것 같아서 짜증 났다.


<상처받기 싫기도 하고, 상처 주고 싶지 않기도 해. 그리고 말하면 상처가 된다 하고... 말하지 않으면 말을 해야 안다 그러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어린애처럼 투덜거렸다. 사실 상대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저 나는 깊어지는 관계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그런데 인생을 살아보니 모든 건 과정이다. 과정은 좋은 것만 남기지 않고, 아프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선택이 올바르지만 하지 않다. 관계도 그렇다는 걸 알았다. 말을 뱉어야 아는 이런 얕은 관계에서 말하지 않고 상대의 등만 봐도 아는 관계는 절대 쉽게 얻어지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내가 감수할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택하겠느냐. 그럼에도 그 길을 가보겠느냐는 내 선택의 문제다.


2024년이 되고, 10년 전 결혼생활 할 때를 돌이켜봤다. 29살이다. 28살에 결혼하고, 허니문 베이비를 유산하고 바로 다시 아이가 생겼다. 29살의 나는, 철이 없다. 그때 나는 인생의 큰 경험(유산)을 하고, 아이가 나에게 온 걸 기뻐했었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돌이켜봤다. 10년 전에도 날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우리 부부의 관계는 어떻게 하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경제적 고민은 그때도 여전했는데, 형편이 지금이 훨씬 좋다. 나의 진로 고민도 여전했는데, 일을 하는데 늘 긴장하지만 그전만큼 두려움은 없다. 우리 가족관계도 늘 위태로웠지만, 오늘도 대화다운 대화를 조금 했다.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모자란 엄마 밑에서 너무나 예쁘게 커주고 있다.


10년의 세월이 헛것이 아니었다. 무의미한 것 같은 소중한 일상들이 모여서 이렇게 된 것이었다. 위태로운 나날들이 모여서 지금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 자신이 없고 두려움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태어났으니 이유가 있겠지(신앙인으로서는 좋은 태도가 아님을 자각한다) 하면서 산다. 결혼도 했으니 책임은 져야지. 도망가고 싶은 날이 열손가락에 전부이고, 때로는 정말 그놈의 역할 노릇 때문에 무게에 짓눌려 죽을 것 같아도 병신 같은 얼굴로 버티고 산다.


맹구 같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사실 웃음기 하나 없는 일상에 웃음이 생기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되었다. 엄마가 아이를 보고 위로받으면 쓰나. 별로 멋지지 않은 생각 같았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위로를 받아야지. 위로를 주는 게 어른이어야지. 나는 그런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10년. 가족. 아이. 나. 역할이 나에게 주는 무게는 컸지만 헛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의미를 찾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과정 속에 배우는 건 있다. 결론과 단정을 뒤로 미루고, 일단은 살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허상을 쫓지 말고, 가족의 얼굴과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싶다. 이런 게 감당이 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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