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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Nov 08. 2023

더 이상을 바라지 말 것_23.11.8

가족으로 존재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또 한 번 어머님과의 대립. 일이 끝나자마자 들어오니 마침 날 기다렸다는 듯이 <너 밥 다 먹고 화분 좀 옮기자>한다. 며칠 전에 쓰러진 나를 알면서도 기어이 집안일들은 해야겠다는 듯한 결의에 찬 목소리.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당시에는.


그런데 어머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본인도 몸도 아픈데 쌓인 일거리에 아마 죽을 맛일 거다.


<어머님, 화분이 이렇게 많은데 좀 줄이면 안돼요?>


어쩐지 어머님도 부정하진 않으신다. 화분의 자리를 옮겨놓고 둘러보시며 하는 말. <정말 많긴 하다. 화분이 많네> 낯설게 자신의 화분들을 보시며 나지막하게 얘기하신다.


지겹고 끝이 없는 집안일은 왜 우리 대한민국 어머님들은 입에 욕을 달면서까지 기어이 해내셔야 하는가? 나는 그리 살지 않겠다. 하면서 일 시키는 어머님을 욕하면서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자식을 둔 어미라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나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안 하면 우리 애(혹은 가족)가 큰 일 날 것 같고, 하자니 너무 힘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머님께 양가감정이 든다. 너무 싫지만 이해가 된다. 그래서 뚝 잘라내지 못하고, 질질 끄는 관계가 되었다.


오늘 볼 일 있으시다고 나가시며 하시는 말.

<밭에 무를 뽑아야 하는데, 너 시간 되면 같이 가자. 오늘이나.. 내일이나..> 내 얼굴을 보기는 민망하기도 하고, 내 반응이 예상되니 신발을 신으며 쳐다보지도 않고 내뱉으신다.


가을에 할 일이 많다지만, 열이 받쳐온다. 이 집 일꾼은 나밖에 없나. 내가 일하러 시집을 왔나.


<오늘은 안돼요> 또 단호하게 얘기한다. 그러자 어머님은 별말씀 없이 나가신다.


혼자 가만히 생각하길, 매번 이렇게 어머님께 휘둘리다가는 제명에 못 살겠네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얼굴만 보면 기다렸다는 듯 일거리를 얘기하시는 어머님 때문에 진짜 너무 힘들다. 김장 한번 건너뛰면 어떻게 되나? 그냥 사 먹지. 너무 짜증 나고 화딱지가 나는데, 나는 아마 내일이든 내일모레든 밭으로 갈 것 같다.


밥상머리에서 손목 아프다며 왼손으로 숟가락 들고 낑낑대는 어머님을 보니 미워하는 것도 힘든 거다.


부모를 향한 양가감정 때문에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가족은 정말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직장 잘 다니고, 학교 잘 다녀와 주면 땡큐이지. 그 이상의 책임과 의무, 부모를 도우라는 암묵적인 압박 같은 건 가족 사이에 없어야 마음이 쉴 수가 있다.


집은 정말 쉼 그 자체여야 가족들이 나가서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으나, 이걸 목표로 가족 내 일원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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