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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Oct 22. 2023

새벽 2시에 푸는 부부싸움썰_23.10.22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뭐 하러 사나 싶을 정도로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미쳤나 싶을 정도로 하루 밥 먹고 싸우고 화해한다. 둘 다 미쳤나.


오늘 큰 아이 학교에 운동회가 있어서, 학교에 갔다. 준비부터 말썽이다. 왜 그렇게 말들을 안 듣는지. 밥을 먹으라 해도 누워 있고, 나와서 밥 먹으라 해도 먹지도 않고. 아빠, 아들들이 다 똑같아서 너무 열이 받았는데, 똑같이 일어나 씻고 준비해도 누구 하나 먼저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참 별로다.


그러려니 하다가도 <추우니 껴입어라>는 말에 아들이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갑갑하고, 내 말투에 하나하나 지적하는 남편도 갑갑하고...


차 안에서 분위기를 괜찮게 잡나 싶다가 우리는 갑자기 싸웠다. 말이 점점 기분 나빠졌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싸한 상태로 내리고, 운동회는 해야겠고.. 운동장 초입에 들어갈 즈음에 남편은 반포기 상태로 화해를 건네왔다.


(예전 같으면 나도 듣고만 있을 법한데, 그냥 참기 싫으니까 속에 참았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운동회 시작. 이후에 끝.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애들이 친구집에서 논단다. 남편이 오래간만에 둘이 시간을 보내자 한다. 그래서 치킨집에 갔는데 말 끝에 또 싸웠다. 이번에는 내 말투 때문에 남편이 속상하다고 기분 상한 거다.

<난 처음부터 너와 내가 다르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말 중 포기라는 말이  꽂혀서 <어떻게 그렇게 포기란 단어를 쓰냐 그 말의 의미가 뭐냐 그럼 부부로 왜 사는 거냐> 난리난리.


너무 진절머리가 나고 지겨웠다. 말투하나 행동하나에 의미 부여해서 자기가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어 하는 게. 엄마로 사는 나는 인정, 존중, 자존감 따위는 개나 준지 오래다.


<이미 그게 나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진 나날을 너무 오래 겪었는데, 내가 남편의 자존감까지 케어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실제로 들었다.


무슨 말만 하면 상처받는다 하고, 예민하게 구니 나도 말하기 싫고. 남편도 나의 마음을 모르겠고, 핀트를 모르겠단다. 나는 웃긴 게 <10년을 살아도 모르는구나>가 여기서 파악이 되고, 결국 맨 처음 내 감이 맞았음을 다시 직감했다. 결국 남편은 듣지만 듣지 않고 있고, 지금도 뭔 말인지 모를 거고, 소통이 굉~장~히~  어려울 거다. 끝없는 방어기제, 방관, 회피, 그리고 다시 맥락 없는 화해.


치킨집에서 싸우고 끝없이 말하면서 우리는 공원을 약 2시간을 돌며 화해했다. 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화해하긴 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황당할 것 같아>


머리는 있어서 생각은 할 줄 알아서 객관적으로 자기를 볼 줄을 안다. 참....


부부싸움에 대해 억지 화해는 다 필요 없다. 상대 마음과 내 마음이 중요한 거다. 우리가 서로를 다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안다고 꼭 합이 잘 맞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합을 잘 맞추면 되니까. 그런데 불필요하게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힘들었다. 아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다가 이 꼴이 났다고 생각한다. 배려보다는 차라리 그때그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마음은 누가 알아채주는 게 아니니까. 남편도 그냥 인정받고 싶다고 얘기하면 되고, 나도 그렇게 말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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