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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Dec 20. 2023

아이들이 어른보다 나은 이유_23.12.19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오늘 알았다. 감동스럽다.

학부모교육에서 교장선생님은 학교선생님들의 일기와 같은 것을 읽어주셨다. 새삼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선생님들의 마음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한 반에 10명 좀 넘는 아이들을 상대하지만, 연령대와 가정마다 상황과 환경이 다르다.


그러니 획일화된 정답이 그 아이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교사는 고민하는 것 같다.


대안학교의 선생님의 역할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절하게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학부모 교육 때 교장선생님이 읽어주시는 <교사의 일기>는 진정성이 꽤 묻어있어서 사실 학부모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돌봄 교실을 시작할 때, 무슨 일을 해야 하는데,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일을 시작해야 했다. 나름 아이들도 보면서 내 건강적인 측면도 생각하면서 여러 조건에 돈을 벌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라고 여겼다. 단순 돈벌이였던 것이다.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일석이조인가.


이 기쁜 마음이 딱 1달 만에 깨졌다. 그리고 돌봄 교실이 가기 싫어졌다. 말 그대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만 오는 듯해서...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 허용의 기준치를 날마다 넘어서는 아이들. 갈등과 놀림이 난무하는 교실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들과 자주 갈등을 빚고, 틱장애까지 온 어느 남자친구와 각 잡고 대화를 나눴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고 분명하게 짚을 건 짚었다. 마침 갈등상황이었다. 이 아이는 어김없이 소리를 꽥 지른다. 우람한 목소리로 <야!!!!> 하는데 듣는 아이가 움찔할 정도로 무섭다. 당장 나는 놀이를 멈추게 하고, 불러냈다.


아이를 처음 마주 앉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처음이 아니다)


나: OO아, 왜 소리 지르는 거야? 지금 너랑 게임하는 게 아니고, 선생님이랑 □□가 하잖아. 그런데 네가 왜 화내는 거야?

아이: 아니 □□가..

나: 그런데 선생님 생각에 네가 화내는 이유는.. 지금 쟤가 규칙을 바꿔서 그런 것 같아. 맞아?

아이: 네.. 왜 규칙을 바꿔요 자꾸.

나: 아니 바꿀 수 있지. 그리고 게임 상대자인 선생님이 괜찮은데.. 왜 네가 화를 내?

아이: 아니에요! 바꾸면 안돼요!

나: OO아, 나는 정말 괜찮아서 상대친구한테 허락해 준 거야. 알고도 바꿔도 괜찮으니까 그냥 둔 거라고. 그런데 다만 나는 네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아마 □□가 네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네가 바른말을 해도 듣지 않을 거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고 말을 해야 해. □□는 소리 지르지 않으면 아마 들어줄 거야.

아이: 아니요. □□는 안 들어줄걸요.

나: 그럼 말하기를 포기할 거야? 그래. 네 말대로 정말 들어주지 않을 수 있어. 그리고 선생님도 바쁘면 네 말을 못 들어줄 때도 있어. 그렇다고 말하기를 포기할 거야? 그리고 선생님이 그랬다면 미안해. 그런데..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 안 하고 포기하지 마. 그런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는 것 같아. 같이 놀고 싶잖아. 그럼 말해야지.

아이:(골똘히 생각한다)


감동적인 순간은 아이는 의자에 앉아, 한참 생각하다가  □□에게 가서 조심스럽게 <□□야 같이 놀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는 <그래 좋아> 했다. 이 아이들에게 <미안해>라고 사과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아이는 그렇게 해맑게 웃으며 같이 놀았다.


중요한 건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인격은 손상되면 안 된다. 그리고 내가 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아이들이 본의 아니게 아니면 고의적으로 뭔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그럴 때 상대가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는 걸 예측하지 말고 말하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적인 이 아이들은 분주함과 그러려니 같은 반응에 파묻혀 그냥 지나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분주하면 매번 일어나는 갈등상황에 민감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릴 때가 있다.


아이들 간에는 벌써 상대 친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어른들은 포장하지만, 아이들은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한다. <얘는 이렇잖아요> 듣다 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부탁하는 게 상대가 그럴지언정 <너 스스로 네가 원하는 걸 상대한테 말하기를 포기하지 말라>라고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상대를 내가 잘 아니까, 어제와 오늘 바뀐 게 없을 테니까> 등 체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념적 태도로 늘 말하기를 주저하고 포기했던 나로서는 늘 욕구불만에 쌓여 있다. 원하는 걸 분명하게 말하고, 상대와 조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쌍방 모두가 불편하다. 먼저 산 선배로써 살아보니 그랬다.


말해야 한다.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은 안다. 아프면 소리라도 질러야지. 건강(?)하게 올바르게(?) 표현하는 법 나도 모른다. 어른이지만 정답을 모른다. 단지 상대도 나와 비슷한 사람일거라는 생각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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