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히로상>: 용감한 한 여자의 이야기

치히로상에게는 쉬운 선택이 나에게는 어렵겠구나.

by 소국

치히로상은 한동안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영화이다. 좋은 영화는 기록해 둔다. 내 기준 좋은 영화는 대작이 아니다. 내게 삶에 대한 소망을 안겨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삶이라는 모순이 힘겨운지. 중학교 때부터 나는 힘들 때마다 영화관을 찾았다.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좋다. 방법은 하나. 독립영화관을 간다. 인기 없는 영화는 그 큰 상영관을 독차지한 나를 위해 상영한다. 오롯이 혼자이고, 영화에 빠져든다. 그렇게 나는 인생이라는 막연하고도 힘겨운 여행길에서 쉼을 얻었다.


결혼하고 바로 아이 낳고 나니, 영화관을 애들 영화만 보러 다니게 되었다. 관심이 없으니 잠도 오더라. 줄곧 신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잠도 솔솔 오고... 한편 감동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그러다 남편이 넷플릭스를 핸드폰에 깔아주었다. 영화중독자, 드라마중독자인 나는 아주 신이 났다. 그러다 발견한 좋은 영화. 이건 널리 알려야 한다. 나는 티가 나는 사람이다. 힘든 것도 얼굴에 티가 나고, 화가 난 것도 얼굴에 티가 나고, 참는 것도 얼굴에 티가 나고, 신나는 것도 얼굴에 티가 난다. 너무나 1차원적인 사람.


<치히로상>을 보는데, 왜 이렇게 먹먹한지.


한 여자의 이야기인데, 나는 그 여자의 스토리가 대체 왜 이렇게 머릿속에 남는지. 내가 이 배우를 좋아해서 그런 건가. <아리무라 카스미> 이 배우가 찍은 영화가 묘하게 내 취향과 겹친다. 자꾸 겹쳐서 좋아하는 영화마다 등장한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얼마나 국민들이 속이 썩어가는지 모른다. 도쿄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죽기도 하고, 나이 든 노년의 어른들이 죽기도 한단다. 삶의 한 자락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나는 사실 너무 어릴 때 이 기분을 많이 느꼈다. 희망이 없다는 절망은 내일을 꿈꾸기가 참 두렵고 무섭다. 일상이 지속되는데 사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또 살아야 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는가.(과거에는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는데, 현재에는 그 대미지가 컸던 여파로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편인 것 같다)


밝디 밝은 치히로상은 자신을 <마사지업소에서 일했던 여자>로 소개하며 도시락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치히로상에게 꼬이는 사람들은 독특한 사람들이 많다. 몰래 치히로상을 사진 찍는 여중생, 꼬마애들에게 놀림당하는 노숙자 할아버지, 자신을 놀리는 초등학생, 눈이 보이지 않는 도시락가게 주인아주머니, 마사지 업소에서 만난 아는 언니 등 내가 볼 때는 좀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치히로상은 자꾸 그네들에게 도시락을 건넨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치히로상을 좋아하게 된다. 인간 대 인간으로.


인간의 외로움의 시작은 소통의 부재로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하지만, 그 말이 다 전달되지 않는다. 마음에 가닿을 수 없다. 소통은 기본적인 욕구 같은데 어린아이 때부터 무언가 우리가 말을 했는데, 나의 마음과 어긋난 대화를 너무 많이 해서 그게 마음의 외로움으로 쌓이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외로운 어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는 정말 다 외로워 보였다. 특히 치히로상이 그중 가장 대표적 인물이다. 치히로상은 특별히 하는 건 없는데 그냥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도시락이나 주고... 그게 다다. 물 밑에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일어나 일하러 간다.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도시락 가게를 떠나고, 어느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곳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치히로상에게 <전에는 어떤 일 했어요?>라고 하자, <그냥 도시락가게에서 일했어요>한다. <마사지업소에서 일했어요>했던 첫 장면과는 다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삶의 힌트를 찾고 싶었다. 이토록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데 가만 보니 치히로상은 대단한 여자였다.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을 팔며, 상냥한 얼굴로 자신의 치부를 부끄럼 없이 당당히 아낌없이 모든 손님에게 말했다. 도시락 가게 주인이 그렇게 웃어주지 말라고 하자 치히로상이 <마사지업소에서 일하던 사람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며 남자손님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가히 대단하다. 그뿐인가. 매번 이름도 모르는 여중생이 자신을 몰래 사진 찍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해주고, 후에 자연스럽게 <왜 오늘은 안 찍어?> 하는 태도. 여중생의 외로움을 살며시 모른척하며 기꺼이 말동무가 되어준다. 자신에게 짓궂은 장난을 하는 초등학생을 혼내며 도시락을 건네고 케어해 주고, 노숙자 할아버지를 씻기고 도시락을 건넨다. 이후에 이 할아버지가 길가에 죽은 채로 발견되자 시체를 묻어준다. 이뿐 아니라 눈앞이 보이지 않는 가게 주인아주머니의 병실을 매번 찾아가 말동무도 되어준다. 이 모든 일들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구 때문도 아니고, 사회적 체면 때문도 아니다. 그저 치히로상의 선택일 뿐. 이 밖에도 치히로상은, 자신의 외로움은 바다에 묻은 채 주변인들의 외로움을 돌본다. 그리고 주변인들이 한데 서로 의지하게 되자 본인은 떠났다.


치히로상이 들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앞을 보지 못하는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공기로도 치히로상이 있고 없음을 알아챘다. 아주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그 공기는 <외로움. 텅 빈 느낌.>이란다. 치히로상은 비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다. 그냥 흡수하는 거다. 듣는다는 건 그런 거다. 치히로상은 살아있지만 비어있었다. 한 존재로 볼 때는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 덕에 사람들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체면과 위선을 떨 필요가 없다. 그래서 더 자유로웠다. 단지 외로울 뿐. 날마다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그 여자가 부러웠다.


비겁한 여자는 오늘도 허덕대며 사는데, 스크린 속 치히로상은 사회적으로는 별 볼 일 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 영혼은 위대해 보였다. 그 여자의 행보가 궁금할 정도로. 그래서 사람들도 치히로상을 그리워한다.


삶의 결핍이 너무 커서, 삶이 구멍나 버려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멍이 나도, 비어있어도 오히려 그녀는 위대한 선택을 한다. 혼자 있든, 누가 있든 그녀의 말과 행동은 내가 보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대단하다. 깊고도 따뜻해서 눈물이 날 정도랄까. 나는 누군가의 치히로상이 될 수 있을까. 그보다 나 자신에게 치히로상이 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붉은 단심> 드라마가 끝났다._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