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냥 둬도 알아서 흘러간다.
넷플릭스는 참 사람을 도파민 폭발 시키는 것 같다. 동시에 나의 선택이 얼마나 변태적인가를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영화나 책, 드라마를 선택할 때 내 취향대로 본다. 그런데 보통 도파민을 느끼는 부분은 <인간의 이중성? 양면성? 뭔가 복잡 미묘함?> 같은 걸 너무나 잘 표현해 낼 때, 도파민을 느끼는 것 같다. 아마 내 안에 그런 욕구가 있어서 그렇겠지. 비루하고 너무나 날것 그대로인 이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한 건 별로 흥미롭지 못하다. 비루한 현실 그대로... 그런데 내 이루지 못한 성적인 욕망이나 성공의 욕망? 아님 다른 기타 욕망을 터뜨려 줄 수 있는 그런... 이상한 것들이 좋다.
40대 아줌마는 인생이 재미없을 나이이다. 왜 사람들이 40대에 안정적인 가정을 두고도 바람이 나는지 나는 이해가 간다. 남편이나 나나 흥미가 떨어지고, 아이들도 뭐 잘 자라는데... 인생이 가히 아름답지 않다. 그냥 한달살이처럼 앞으로도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이 참 아름답지 못하다. 사실 너무 처절할 때도 많다. 뭐라 딱 표현하기 어려운데.... 무겁다. 지루하다. 처절하다. 낯부끄럽다. 비루하다. 뭐 그런 언어에 가까운 것 같다. 아이를 낳았으니 책임은 져야겠고 그렇다고 대충 막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른 몸뚱이를 지닌 아이에 가까운 지능과 마음으로 뭔가를 하려니 참 쉽지 않다.
시간은 늘 없는 40대. 넷플릭스가 중독성이 있음에도 켜는 이유는 빠르게 도파민을 충족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나 재미있을 수가.
<블라디미르>를 보면서 아주 속이 다 후련했다. 교수 한 명이 나오는데, 어찌나 변태스러운지. 고상한 척은 다하면서 부부관계는 엉망이고 애도 엉망이고 심지어 성적욕구를 글을 쓰면서 푼다. 하. 그런데 나는 이 여자한테 반해버렸다. 그래 품위는 저렇게 지키는 거다. 나는 변태 맞다. 그런데 나는 차라리 그런 여자가 솔직하고 좋다. 그리고 똑똑하게 본인의 길을 헤쳐나가서 좋다. 여자로 태어나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다는 것.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 아줌마도 성적욕망이 있다는 것. 성공적인 커리어 좋으나 한 인간으로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처참하다는 것. 삶의 현실이라는 민낯과 욕망을 가진 여성으로 교차하며 드라마가 계속 진행되는데, 이 막장 드라마가 내 가슴을 후벼 판다.
가족으로 살면 살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나 자신>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어디에 잃어버렸나? 누군가의 삶에 귀속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열망이 더 타오른다. (미안하다 남편아. 얘들아)
그런데 더 대박인 작품을 만나버렸네. <순수 박물관>이다. 이건 또 뭐지? 대충 빠르게 넘겨 봤는데 역시 사랑을 하면 눈이 돌아가는 게 맞는구나 싶다. 이성적 판단이 안된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쉑히가 가히 정상이 아닌데 왜 난 이해되지? 저 쉑히가 다 망쳐놓았는데 왜 난 그 광적인 집착이 이해되냐고. 그 쉑히 마음이 순수라고 해도 되는 거냐. 두 여자 박살 내놓고 그게 맞냐. 말 그대로 겁나 비겁하고 치졸한 새끼 같은데... 한편 내 마음 깊은 곳은 그 쉑히를 이해하고 있다. 아놔. 이게 이해가 되어버리는 나이가 되었다. 오르한 파묵 소설이란다. 게다가 튀르키예에 박물관도 있단다.
하. 사람이란 동물은 대체 어떤 것이냐.
알다가도 모르겠고 그 깊이라는 게 얼마나 깊은지.
내 마음도 이런데... 마음이라는 게 작동할 때, 한 사람을 향한 어떤 감정이 변하는 게 얼마나 다양한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단순한 말도 형용하기에 부족하다. 사랑은 미움을 동반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고, 그러다 쓸쓸해지기도 하고 곁에 있음에도 외로워지도 한다. 나는 상대를 안다고 느꼈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으로 결론지어버리니까. 그런데 사실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닌데 말이다.
나는 두 작품이 생각보다 인상이 강했다. 쉽게 남을 부러워하고 인생을 쉽게 욕망하고 좌절하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아줌마한테 딱이다. 너무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