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 2

이 사람과 8개월을 잘 지내야 할텐데....

by 소국

영문도 모르고 쫄래쫄래 젊은 남자직원을 따라갔다.


이 사람이 퇴근 전인줄도 몰랐다. 퇴근 전이라는 건 나중에 가만히 혼자 생각하다가 이 직원이 퇴근 전에 날 불러서 얘기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냥 일시키려나 보다 생각했다.

맨 처음 일하러 왔을때 박물관 소개며, 업무소개며 이 직원이 다 가르쳐줬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 것이다.

그날은 나를 박물관 내의 직원 도서관으로 데려가길래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도서관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서

가만히 서더니 얌전히 말한다.

<아.. 저 다른게 아니라 아침에 펜을 말없이 가져가셨잖아요?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주셨으면 해서요...>


헉..... 기억도 나지 않는다.

너무 당황해서 <제가요? 저 말하지 않았어요?>

정색하며 <아니요 말 안했습니다>

2차로 더 당황해서 <아 정말 죄송해요 전 몰랐어요 제가 말한줄 알았어요..>


그러고는 남자직원은 괜찮다고 자리에 자기가 없으면 말안해도 되지만 자기가 있을 경우는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너무 쪽팔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낯이 화끈거려죽겠는데 남자직원이 업무얘기로 화제를 돌리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나도 대꾸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혹시나 내가 그런 실수를 또 하거든 꼭 말해달라. 절대 고의는 아니다. 난 말한줄 알았다. 진짜 미안하다를 연신 말했다.


그리고 멍했다. 이게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뭔가 하루가 정말 다이나믹하고, 내가 대역죄인이 된거 같았다는데. 사실 펜을 가져간 시간은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출근하자마자였다. 이유는 급하게 사무실 캐비닛에 글씨를 써야했는데 다른 사무실방이었고 아는사람은 그 남자직원 뿐이라 쓱 가져갔다. 봤으니 별탈 없을거라고 생각했고 돌려줄때 작은목소리로(다른 직원들 일하니까)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소름은 이 직원이 이걸 하루종일 묵상하다가 오후 5시쯤 자기 퇴근전에 얘기했다는것이다.


그것도 그건데. 내마음이 이렇게나 무거운 까닭은.

이 직원에게 볼펜의 실수와는 비교도 안되는 더 큰 말실수를 한 거 같아서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낀거였다.


말주변도 없는 나는 내일 이 직원을 보긴 봐야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을것 같아서 장문의 캇톡을 보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나의 언행이...(진심인데 진심으로 느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내일 안마주치게 해달라고.

그리고, 행사가 꼬여서 단둘이 밥을 먹었고 이 사건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할 수 없었다.(속마음은 체하는줄 알았다)

그리고, 이 남자직원은 코로나 양성에 걸려 일주일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직원은 월요일이면 출근한다.......하..............

그리고, 나만 마음이 무겁다.


개매너의 아줌마 직원으로 등극한 꼴이다.

쪽팔리고 화끈거리고 자존심상하고. 그렇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는데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나의 흑역사다.


8개월... 잘지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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