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풍경은 싱그러운데
뭔 행사가 그리 많아 즐길 틈이 없어 1
5월은 나에게 죽음의 달이다. 애 둘 엄마는 5월이 가정의 달이지만 한편 내 역할에서는 일이 제일 많은 달이다. 그래. 가정을 꾸린 애엄마가 1년에 한번 있는 행사들을 기쁜마음으로 못할까. 하면서 힘차게 행사치레를 해본다.
5월5일 어린이날. 이를 갈고 갈았던 첫째아들은 엄마가 내심 무심하게 말하는 태도가 섭섭했던지 주구장창 어린이날을 노래불렀다. 선물도 이미 골라놓았고 어린이날은 무얼할지 혼자만의 상상으로 들떠 있었다. 이런 어린아이의 마음을 알아줘야 찐엄마인데, 나는 가짜엄마인가 어우 얄미워서 혼났다. 그러다가 정신차리고 아이의 말을 잘들으라던 육아서의 한구절이 떠올라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말그대로 듣기만 한다. 그래서 잘 듣고 어린이날이 오지도 않았는데 일단 선물을 샀고, 이벤트를 좋아하는 학부모 친구를 따라 펜션도 갈 준비를 했다.
펜션에 가기 위해 나는 어머님을 설득해야했다. 며느리가 바깥으로 싸돌아다니는게 못내 싫으셨던 어머님의 마음을 다독다독하며, 한편 어머님의 폭풍 잔소리 3시간이나 들어야 했다. 가족이라는 게 참 그렇다. 가치관이 이렇게 다르니 나 혼자 애키우고 살았으면 문제해결의 속도가 배가 빨라질텐데, 뭐 하나하나 거북이 걸음마 같은 속도로 해결해야한다.
흡사 어린이집 어느반의 단체사진 같다. 도대체 몇명이냐.나는 5월 4일 박물관 기획전 전시 개막식이 있었다. 하루종일 긴장하며 뛰어다니느라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것 같았다. 개막식 뒤처리까지 하느라 결국 늦은 퇴근. 첫째는 이미 펜션으로 갔고, 둘째는 집에서 만나 내가 픽업을 해서 펜션으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고맙게도 학부모 친구가 태우러 와줘서 저녁 8시쯤 되어서야 펜션에 도착했다. 12~13명쯤 되는 아이들이 어린이날을 성공적으로 맞이했다. 5월 4일 어린이날 전야제처럼 신나게 놀고 5월 5일 눈뜨자마자 야외 수영장에서 또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3시간 폭풍 잔소리에 멘탈 털린게 참 별거 아니었다.
이후, 5월 7일부터 다시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아이들을 시켜 편지를 쓰게 했다.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거라. 9살, 6살 애들을 붙잡고 쓰라하니 곧잘 쓴다. 9살 눈치빠른 큰애는 아주 마음에 쏙 드는 그림과 글을 써놓고, 6살 둘째는 그림을 잔뜩 그려놨다. 편지가 완성되자마자 할머니 방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멋없이 편지가 전달되었고, 어머님 표정을 보니 기쁜 표정이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었다. 미친듯이 남편과 회의 돌입. 어떻게 할까. 어머님이나 울 엄마나 이번에 용돈을 드리냐 선물을 드리냐 이말 저말이 나왔다. 신랑은 언제나 물질은 양가 동일하게 하자 주의인데, 문제는 우리가 돈이 없다. 돈이 없으니 돈은 못드리고 결국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 기왕 드리는거 값진 것으로 드리자 한다. 처음에는 목걸이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스마트워치로 변경되어 부리나케 주문했다.
7시 출근 후, 9시에 남편과 미친듯이 톡질어머님은 선물을 받아보시곤 <이 비싼걸 왜 샀냐>하시며 내심 좋아하시는것 같았다. 사실 반반인 마음 같았다. 불필요해 보이는데 있으면 좋을것 같은. 지금은 결국 일하는데 불편하시다고 풀어버리셨지만, 잘 가지고는 계신다. 식사를 회를 사드리고 싶었는데, 한사코 돈쓰지말라고 말씀하시길래 돼지고기 목살을 사다가 실컷 먹었다. 이렇게 무사히 어버이날도 지나갔다.
5월 17일은 시아버님의 기일이다. 이날은 평일이라 남편이랑 내가 연차를 써야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단박에 연차를 쓸 수 없으니 주말에 산소에 우리끼리 다녀오자고. 나는 남편 뜻을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5월 14일에 산소에 갈 채비를 한다. 뭐 딱히 음식준비를 한건 아니지만 애들을 데리고 물건들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산소에서 음식을 먹으려 버너에 불을 켜도 바람이 너무 세서 꺼질라 말라 하고, 파라솔로 막으려해봐도 정신이 없다. 아오 뭐 하나 하기 정말 힘들다. 그래도 펄럭거리는 파라솔 안에 옹기종기 모여 밥한끼 먹고 내려왔다.
맨날 앞모습만 보다 뒷모습을 보니 아직도 애기같다. 남편은 고생한 아내를 쉬고 해주고 싶었는지,(내 착각인가;) 아님 자기가 놀고 싶었는지 아님 어머님빼고 우리끼리 있고 싶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가까운 계곡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더니 신나게 물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둘째를 데리고 돗자리 펴고 몸을 누였다. 세상 피곤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갔다. 17일 진짜 기일에 아가씨네가 온다는 얘기에 폭풍 장보기와 대청소를 하며.
17일 진짜 아버님 기일이 다가왔고, 전날 16일 집안은 분주했다. 나는 일하러 가느라 내막은 모르지만 아가씨와 어머님의 표정은 멍해보였다. 그러면 퇴근한 나는 이분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고했다고 위로해야한다. 미리 장봐둔 돼지고기를 굽고 술상을 차렸다. 고생했다고 아가씨네와 어머님께 위로하며 밤 11시까지 이야기 나눴다. 어머님은 술을 안하시지만 가족끼리 모여 앉은 이모습을 흐뭇해하시는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술한잔을 꼭 따라드려야하지 않을까. 제일 고생하신것 같은데 툴툴거리시느라 순간순간을 즐기질 못하시는 어머님이 어쩐지 짠하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이걸로 사실 5월 행사가 끝나지 않았다.
17일 기일 다음날 둘째 소풍날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유부초밥과 과일 도시락을 쌌다. 퇴근 후 아이는 재잘재잘 소풍에서 너무 재밌었다고 얘기한다. 다시 뿌듯하다. 내 몸뚱이가 아이의 행복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싶다. 어머님은 또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나 뭘 하는게 안쓰러웠는지 폭풍청소를 해놓으셨다. 민망하다. 너무 힘들어서 말이 삐딱하게 나갔다. 고맙다고 하면 될것을. 힘든데 뭐하러 하셨냐고.
이제 막바지다. 친정아버지 기일과 둘째 생일이 남았다.
기왕이면 정성스럽게 즐겁게 맞이하자. 가족들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준비하는 나도 분주하지만 어머님이 웃는 얼굴. 우리 남편이 웃는 얼굴. 우리 아이들이 웃는 얼굴. 을 잊지 않고 준비하는 나도 즐겁길 바란다.
오늘 아침에 남편이 괜스레 5시 30분부터 일어나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당신 가는거 보려고 한단다. 어이가 없다. 자고 일어나도 긴장한 탓에 자서 그런지 정신이 없는데 이 남편의 말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게 아니라 애들 도시락가방 챙기는거나 도와주지 내얼굴만 쳐다보고 앉았나 싶다. 환장.
저 아저씨는 나이 40이 지나도 낭만이 마음속에 아직도 꿈틀거리나 보다.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내가 반응하길 바란걸까.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고 <오빠 얼른 들어가 자~ 피곤하다며 왜 나왔냐~> 했다. 그러고 나는 집을 나왔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