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도 속상하고 엄마도 속상하고
니 마음을 알긴 안다만 엄마도 버겁다.
나의 체력이 무제한이었으면 좋겠다. 돈도 무제한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봐주는 사람도 끝도 없이 많았으면 좋겠다. 집안일 해주는 사람도 많았으면 좋겠다. 남편과 티키타카 해줄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고나니 또 후회스런 하루가 밀려온다. 파도같이.
열심히 살았는데 왜 자꾸 더 자신이 없어질까.
뭐가 잘못된건지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몸이 무겁다.
어제 못본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울기만 했다.
사람이 죽으면 언제 괜찮아지나 생각해보니 이건 삼일장 이내에 괜찮아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았다. 아 나 아직 안괜찮구나. 아직도 부모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 하고 싶은 말이 많구나. 부모가 죽었어도 나 스스로 나의 슬픔을 덮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래야 되는 줄 알았나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마저도 눈치로 배웠다.
미정이가 엄마 유골함을 보며 <엄마 눈와>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냥 엄마 눈와 했는데.
지금도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사람이 죽는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이었나 부모를 보낼 때도 이 정도로 안 울었던것 같은데. 말 그대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닥쳐주면 좋겠다. 호상이 어디있나. 호상이. 그냥 죽음인데. 걱정스런 말도 모두 짐같다. 죽음 앞에 잠시라도 모든 사람들이 닥칠 줄 아는 미덕이 생겼으면 좋겠다.
드라마를 보다가 큰딸에게 이입되어 정말 장녀의 본성이 튀어나와버렸다. 그지같은 집구석의 친척들이 아주 꼴보기 싫은 것이다. 실제로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도 안되어 별꼴을 다보고 가족이 남보다 더한 꼴을 다보고 나니 정이 뚝 떨어져버린 것이다.
가장 약한줄 알았던 미정이가 기어이 살아남는 것처럼 나도 기어이 살겠지만 나이 먹을수록 더러운 꼴, 안겪고 싶은 일들을 만가지로 겪다보니 강해져서 살게 되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일들로 엄청 겁먹은 길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며 세상을 살고 있다. 살아 남긴 했다만 이게 삶이라는 게 맞는지 의구심을 한쪽 구석에 계속 가지고.
데미지를 한껏 받았으므로 휴식이 필요함에도 드라마속 남매들처럼 데미지와 관계없이 삶은 계속되기에 눈물을 꾹꾹 참아가며 하루하루 버틴다. 장례 이후에도 집안에 쌓인 빨래. 설거지. 음식문제. 얼마나 일상적인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실제로 나의 친정아버지 장례때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애 챙기랴 음식 나르랴 손님 챙기랴 슬퍼할 겨를도 없었고, 일상은 역시 무심히 흘러갔다. 몸이 녹초여도 해야하는 것들을 나도 해냈었다.
나에게는 오늘이 그런 하루였나보다. 별다른 힘든 일을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했고, 퇴근후 미친듯이 장도 봤고, 장을 보고 집에 들어오니 어머님이 애들 케어해주시고 계셨고, 나는 식사를 차렸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놀고 싶은데 일하는 엄마때문에 못놀았다고 징징거려서 데리고 나가 신나게 한판 뛰고 와서 반찬을 만들었다. 애들 숙제를 봐주고 나니. 밤 10시. 오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나의 시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슬펐다. 아이의 슬픔으로 나의 수고가 헛된것만 같아 나도 슬펐다.
이후 나는 기어이 드라마 한편을 보고야 말았다. 질질 짜고 울고 나서 한 말은 <잠은 다 잤네>였다. 브런치를 켜고 혼자 주절주절 거려본다. 쏘맥보다 더 취하게 나의 이 맘을 쏟아내고 자련다.
진절머리 나도록 지겨운 일상과 상처받을대로 받은 이 생에 역겹고 괴로운 일이 너무 많고, 앞으로 더한 상처를 더 받을지 몰라도 나란 인간은 그 구질구질한 인생을 사랑하기로 결정한다. 지나온 나의 인생도, 지금의 나의 인생도, 앞으로의 나의 인생도. 의미없는 건 없을거야. 라며 나를 다독여본다.
[애들아. 엄마가 철이 없어서 관대하지 못해 미안하다.
생명 자체인 너희를 그저 바라만 봐도 아까운데, 늘 엄마가 망치는 것 같아 참 마음이 무겁다. 나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귀한 너희를 언제나 응원한다. 바라기는 어리석은 엄마의 말과 행동이 내일 아침이면 말끔히 잊혀져, 다시 해맑게 웃고 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길 바랄뿐이다. 언제나 웃음 잃지 않고 이 세상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살기를. 늘 하나님이 너희와 동행해주시길 바라고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