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붙잡고 싶었던 하루

그냥 역할을 따지지 않고 일을 하고 났더니 한숨이 났다.

by 소국

하루를 꽉 채워 보내고 깊은 한숨이 났다.


박물관에 배려 깊은 싸가지가 나에게 자꾸 일을 토스한다. 메일을 읽지도 않고 나에게 토스한 것 같다. 순간 열이 받았다. 그래도 홍보업무가 내 업무니까 잘해두면 박물관에 도움이 될거고 배워두면 나도 좋겠지 싶어서 메일을 열고 해봤다. 그런데 역시 열이 받는다. 보고형식의 메일을 쓰고 있자니 화가 났다. 내가 분명히 이거 박물관에 도움이 될거라고 대대적으로 한번 해보자 했는데 선임 선생님들이 컷했다. 그런데 이게 보고를 해야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업무를 한게 없는데 담당자로써 보고는 해야하고 이게 뭔가 싶은거다.


한숨을 푹푹쉬며, (배려깊은 싸가지에게도 화가 나지만, 이 직원은 상사가 시켜서 신청만 했을뿐 자기 업무가 아닌것 같아 토스를 한것이다) 기어이 보고메일을 작성했다.


기왕이면 박물관에 그래도 어떻게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으로 한줄한줄 쓴것같다. 분명히 나쁜 사람들은 아닌데 그렇다고 내 의견이 막 수용되는 느낌도 아니다. 이럴때 계약직이라 그런건가 생각도 들다가. 아니면 선생님들이 업무가 많으셔서 일을 키우기 싫으신건가 나름 이해해보려 한다.(사실 허락만 해주면 내일인데 허락도 안해줘서 이해가 안되었나보다. 그냥 아직 내가 못미더운가보다 생각한다.)


그리고 잡다한 업무를 병행하면서 이게 뭐하는건가 하는 현타가 3초에 한번씩 왔다갔다 했다. 여기서 잡다한 업무란 박물관에 자원봉사자들 면접을 보는데, 면접안내 및 연락, 사무실 전화받기, 자문운영회 회의 세팅 및 준비 등등이다. 이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지하부터 2층까지 왔다갔다, 어렵지 않은데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데 누군가는 꼭 해야하는 잡다한 업무를 이것저것 되는대로 처리하다보면 생각없이 기계처럼 하고있는 나를 발견할때 현타가 오는것이다. 그냥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 하루가 쑥 지나가는 기분이다. 그러다 오후가 되어버렸다. 새벽5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저러고 있으면 현타가 오는 것이다.


아침에 분명 사울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겁쟁이 사울이 얼마나 용감무쌍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냈는지를 읽었는데, 나도 그런 용감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용감은 무슨. 내 모습은 이 삶에 두들겨 맞은 패잔병 같았다.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그래도 나는 살아보겠다며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는다. 허무한 하루를 책이 나름 나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있다. 몸이 힘들땐 속도를 늦춘다. 힘들다고 집안일 안할수 없고 참새같은 아이들이 짹짹거리는데 내가 불만족스럽다고 화를 낼수도 없다. 역효과일뿐이라는 걸 알기에 오히려 음악을 틀고 아이들이 하고싶은대로 둔다. 잔소리 대신 음악을 들으며 내 속도를 늦춰본다. 그러면 아이들이 늦더라도 움직여 스스로 할 일을 해낸다. 밤 10시가 되니 결국엔 내가 못참고<이승리 너무한다 해도해도> 요런 말을 해버렸으나 <오늘은 엄마가 마음이 힘들었다>고 했는데, 이승리의 반응은 <왜 힘들어? 난 안 힘든데> 한다. 나도 엄마는 엄마인가 어제의 기도처럼 해맑은것 같아 다행이다는 안도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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