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간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 즐거운 얘기였다. 녹음을 하고 싶을 정도로 선생님들과 밀도 있는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다들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할말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영화 이야기에서 철학적인 이야기까지 퍼졌다.
일상의 대화들 중 내 표현에 의하면 인스턴트식 대화가 대부분이다.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둘이 할 얘기가 없을땐 꼭 <남>이 소환된다. 이래서 남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되는거다. 둘이 할말이 없다는 이유로 남이 소환되면 결국 씹을 거리? 너무 막 얘기했나? 그렇다고 면전에서는 할 수 없는 평가적인 내용이 다분한 얘기들이 나오는거다. 그러다보면 생각이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남에게 <나>를 이런식으로 소환하겠구나 싶다. 내가 대화를 하다가 찝찝한 이유를 알았다. 이 느낌이었다.
오후에 어떤 남자직원에게 인터넷으로 설문지 만드는법, qr코드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남자직원에게 배우는 학예사 선생님이 계셨다. 그런데 그 학예사 선생님의 말이 웃겨서 나도 같이 웃으며 옆에서 배웠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조심스러울때가 말할때, 대할때인데 뭔가 농담이 진담섞인 농담 같아서 괜히 마음이 혼자 무거울 때가 있다.
선생님1: 윤선생님이 컴퓨터를 잘해요~
선생님2: 이제는 컴퓨터를 못해서 일을 못하겠어~ 더 잘하는 사람이 와야지? (이렇게 말씀하신것 같다.)
나: 에이~ 같이 배우면서 하면 되죠~ 그리고 더 잘하는 사람은 여기 안와요(이말을 왜했을까?갑자기 여기 일하는 사람 뭐가 되니ㅠ 컴퓨터 업계로 간다는 얘기였는데ㅠ)
선생님1: 윤선생님이 하시면 되지~ 엄청 잘하잖아.
서로 이래저래 말하고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괜히 꼈다 싶다.
선생님1: 윤선생님이 컴퓨터도 잘하고 러시아어도 잘해. 다 좋은데 한가지 우려되는게 있어. 혼자 있으려고 하는거. 공군장교였잖아. 선생님2가 선임이었대. 서로 나중에 박물관와서 안거야. 윤선생님은 여기 박물관이 좋아서 산책도 엄청 열심히 하고 그렇잖아.(사실 나는 이게 칭찬같기도 하고 욕같기도 하다. 사회성 떨어진다 뭐 이런 의미처럼 받아들여졌다.)
나: 저도 여기가 좋아요. 다른 박물관에 욕심 없어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왜 내의견을 말할까?관심받고 싶어 안달났나. 나 왜이럴까.미쳤나보다)
오전에 영화얘기하던 때가 그립다. 진짜. 이게 뭐지. 영화 주제 한개 던졌는데 그렇게 깊은 얘기가 나와서 순간적으로 행복했다.
선생님2가 오전에 한 말 중에 우리가 영화나 예술을 볼 때 끊임없이 생각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좋은 영화나 예술은 지각을 멈추게 한다고 했다. 지각을 멈출때에만 비로소 존재로 자신이 인식되기 때문이란다.
나는 이말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좋은 영화. 풍경. 사람. 예술 뭐 다 이에 해당하지 않나.
선생님1이 자꾸 남에 대해 이야기거리를 만든다고 나쁜사람이다 평가하긴 이른것 같다. 나도 같은 부류이어서 편드는게 아니라, 관계가 그만큼 서먹하다는 걸 반증하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할말이 없으면 하는게 남 얘기들을 하는거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모두가 깊이있는 사이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대화대운 대화를 한번쯤 나누면 힘든 직장생활의 활력소는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