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기독대안학교이다. 이 학교에 다니게 된 배경은 굳이 긴 설명도 필요없다. 욕심이 맞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 그리고 나에게는 신앙이 중요했다. 당시에는 신앙도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라는 정말 얕은 생각을 했었다.
1년을 보내고 나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신앙은 사실 교육으로 심어지는게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달았고, 어떤 좋은 교육 시스템보다 오히려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는 자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매분매초 좋은 태도로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내 스스로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뭔가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날마다 만회할 기회) 이 생을 헛되이 살고 싶지 않아 날마다 버둥거리는 것이다. 또한 자식 있는 엄마로써도 그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든 아이가 원하면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로도 가야겠구나 생각도 든다. 어떤 욕심에 의한 것이라면 멈출줄도 알아야겠구나 어렴풋이 생각하며 2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학교를 좋아했다. 아이의 기질은 겁은 많은데 승부욕이 있고 집념이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친구를 보며 자기가 피구를 잘해야겠다며 밤마다 벽에 피구공을 튕겼다.(사실 쳐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리고 우리집은 단독주택이다.) 기어이 피구를 잘하고 싶은것이다. 마음을 표현하는게 서툴뿐 어지간한 학교생활은 잘 해나가는 아들 같아보였다.
그런데 최근에 같은 반 장애를 가진 친구랑 노는데 배려심이 눈꼽만치도 보이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났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장애를 가진 친구의 습관이 있는데 그마저도 무시하는것 같았다. 아들의 행동을 눈여겨보긴 했다.
그리고 몇번이고 얘기를 했다. 장애를 가진 친구가 왜 배려가 필요한지. 장애를 갖고 안갖고를 떠나서 그냥 내가 그런 입장이 되면 기분이 어떨것 같은지. 친구라고는 이 뿐인데 서로 챙기고 놀지 않으면 어떻게 놀수 있냐며 질문인지 잔소리인지 타박인지 설명인지도 모를.. 그런 말들을 계속 했었다. 나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좀 단호하게 얘기했다.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보라는 의미였는데, 이게 전달이 된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밤에 장애 아동 학부모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사실 평소에도 자주 연락한다. 이 장애 아동이 우리아들을 좋아하고 따라하는데 우리아들이 안놀아줘서 학부모며 장애아동이며 마음이 슬펐던 것이다. 안놀아주는 우리 아이의 마음도 알겠다만, 장애 아동의 다름을 이제는 우리 아이가 분명히 깨닫는 것 같아 점점 갈수록 <친구>라는 걸 더 심어주고 싶었다. 가족이라는 것이 미워도 가족인것처럼. 뭔가 우리 아이도 느끼고 있는 이 불편한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할때는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수고로움도 인정해주었다.
매일 쓰는 일기장 같은 비스무리한 것. 저건 가히 기념비적이다.
만나면 매번 울고불고. 당연히 우는 쪽은 장애아동. 이유는 우리 아들이 장애 아동의 말을 안들어줘서. 우리 아들이 장애 아동이 원하는 놀이를 안해줘서이다.
만날때마다 만나는게 맞는건가. 아닌건가. 당최 나도 모르겠는데 저 사진을 턱하니 보내오셨다. 나는 사실 멍했다. 저 사진을 보면서도. 일단 기운이 없었고. 승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장애 아동의 마음을 알아준 기억이 나질 않는단다. 이놈의 쉑히는 관심이 없구나 싶어 괜히 질문했다 하는데. 장애아동의 엄마가 아주 디테일하게 상황 설명을 하신다. 이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먹먹했다.
장애아동의 엄마는 감히 상상해보자면 하루가 48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매순간 학교에서 전화올까 긴장하며 보내는 엄마이다. 오늘은 또 무슨일이 있을까 하며.
나는 아이들의 관계를 떠나 이 엄마와 관계를 맺었다. 엄마의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줄 학부모가 없어보였고 위로가 필요해보였다. 선을 넘지 말아야하는데 늘 넘나드는것 같다. 그런데 저 사진을 보니 우리 아들이 먼저 떠오르며 우리 아들이 해냈구나 그 어렵다는 친구 마음을 알아줬구나 생각하다가 아차 싶다. 이게 아니구나. 기특한 게 아니라 당연한거고 저걸 보낸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떨까.
참 나란 인간의 무한 이기심의 끝은 어디인가. 이런걸로 보람차다 느끼다가 참 나도 덜되었구나를 다시 깨달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 학교를 다니며 이런 친구들을 만나며 다양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나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은 저거였다. 저런 인간이 될 수만 있다면 성숙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나나 아이나 몇년뒤 성숙해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