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하찮다고 해서 생각이 하찮진 않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그런것 같다.(22.05.27)

by 소국

<미움받을용기>를 읽어보면 인생에 대해 원인론과 목적론이 있다고 한다. 두가지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면 여태 나는 원인론에 입각해서 살았던 것 같고, 그런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봤던 것 같다.


오늘은 학예사 선생님들이 전부 출근을 하지 않으셨다. 우연치 않게 각자 다른 이유로 출장을 가게 되신 것이다. 중년의 남자 학예사 선생님과 미혼의 남자 직원만 남았다. 선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중년의 부부관계 이야기, 미혼 남자 직원의 결혼, 연애 이야기 등이 나왔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나도 사실 선을 모른다. 그러니 그냥 애매한 대답.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이 중년의 학예사 선생님은 가만히 보니 사람에 따라 이야기 주제가 바뀌고, 또 이 분은 사람에 대해 애정이 있어서 뭔가 나름 신경쓰는 것 같다. (신경쓴다는 건 사람을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는 거다. 친밀해져보려고)


그래서 신기하게 아주 하찮은 대화부터 아주 깊이 있는 대화까지 폭이 넓다. 오전에 대화할때는 굉장히 인생 오래사신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은것 같고, 오후에 대화할때는 인생 막사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의 양면성이라는게 이런건가 싶다. 10년을 살아도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나는 가끔 당신을 모르겠어>

남편의 이런 말때문에 내가 남편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도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 인생에 관한 생각들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데, 아무리 함께 산 가족이라도 사실 잘 모르겠다는게 내 결론이었다.


인생의 원인론에 입각해서 살다보니, 늘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에 바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하니 참 단순해진다. 그런데 뭔가 친밀함이 목적인지 아님 훈수두려는게 목적인지 아님 뭐가 목적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그럴때 대화가 막히는데. 오늘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그랬다.


목적을 모르겠는 대화에 멋쩍은 어린 직원은 일때문인지 민망해서인지 뭔지 자꾸 자리이탈을 했고, 나는 퇴근시간이 되어 나왔다.


그 학예사선생님도, 젊은 직원도 그저 친밀해지려다가 어색해질뿐인 것 같다. 28년을 살아도 38년을 살아도 49년을 살아도 오늘 하루가 새로워서, 이런 낯선 그룹이 어색해서 뭐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나도 몰라서 그냥 어설프게 대답하다보니 그냥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른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찮아서가 아니라 어설퍼서.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시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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