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독교인의 비애

크리스천이라는 감투가 나를 자유스럽지 못하게 한다.

by 소국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 나를 새로운 눈빛으로 본다. 그러면 여러가지 잡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기독교인으로써 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이 나를 긴장시킨다.


어느 선생님이 왜 제사를 지낼때 절하지 말라고 하느냐고 한다. 나는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질문의 의도가 느껴져서이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게 아니라 대부분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질문 공세를 할 때가 많다. 질문을 받다보면 그냥 조용히 입다물고 있어야 했나 싶을때가 있다.


나는 어쭙잖게 대답하기 시작한다. 사실 뭘 제대로 알아서 대답한다기보다는 질문을 했으니 예의상 대답을 한다. 의도를 알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답하기 시작한다. <그건 사실 하나님만 예배하라는 의도에서 말씀하신거예요. 절이라는게 숭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잖아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 다른 신에게 숭배를 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싫어한거죠>


그러자 대뜸 <그러니까 너무 이기적인거 아니야. 절도 할 수 있는거지. 내 부모나 조상한테도 마음을 표현하는거잖아>


<부모에 대한 사랑을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성경을 읽어보면 결국엔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라...>


<아니 선생님은 날 설득하지 못했어 설득이 안돼>


아 나도 포기. 내가 말하면서도 이게 뭔말인가. 나는 사실 하나님은 인격체다. 이분은 관계를 원하신다. 이분도 질투가 있고 그렇다. 뭐 이런 말까지 하고 싶었는데 이게 뭔가 싶다.


그리고 중요한건 나도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엔 부끄럽게도 <나도 내가 뭔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선생님 교회 가세요> 그랬다.


이게 뭔말이야. 말이야 방구야.


그런데 나는 최근에 이런 감정을 자주 느낀다. 앞으로 브런치에도 기독교인의 감투를 쓴 자로써 느껴서는 안되는 감정과 생각과 마음을 토로할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인이 직장생활을 하는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순수해서가 아니라 양극의 가치관을 하루동안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다리가 찢어지고 머리통이 깨질 것 같기 때문이다. 천국을 소망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기독교인이라는 감투가 나를 더 부자유스럽게 만드는게 화가 나서 지껄여본다. 어디서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말을 가려야 하고, 생각을 거르고, 마음을 고치는게 습관처럼 되어있는데 어느순간 멘붕이 온다. 생각보다 자아가 너무 강해서 끝없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신앙마저도 남들이 이해하는 방식대로, 살아온 방식대로, 경험한 방식대로 하려는구나. 나야말로 하나님을 제한하는거 아닌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전능자다. 나같은 말많고 생각많은 기독교인도 있을수 있지 않나. 남들이 쉬쉬하는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인 감투를 쓴 아줌마가 여과없이 생각. 느낌. 감정을 써보리.


철들고 깊이있는 순간이 오면 좋겠지만 어느 목사님 말씀처럼 방황만 하다가 죽을수도 있다. 내가 앞으로 쓰는 기독교인으로써 이 세상 살 때 드는 고민을 쓸때 거의 <나의 방황일지>가 될 듯하다. 그래도 뭐 방황하다 죽더라도 하나님을 알고 죽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싶다.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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