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가 된 '88만원세대'

세대 착취를 끝내기 위한 하나의 질문

by 생각의향방


'영포티' 논쟁이 재밌다. 단순히 젊어 보이려는 아재, 쿨해 보이려는 꼰대를 넘어서 나잇값 못하고 자기애에 취해 사는 40대들에 대한 2030들의 조리돌림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영포티에 대한 조리돌림은 비단 어울리지 않는 패션이나 소확행의 덕후적 소비행태, 미혼 영포티 들에게서 나타나는 연애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예를 들어 20대도 꼬실 수 있다든지)을 넘어 그들의 정치적 지향성 또한 논란이다. 실제로 40대의 약 70%가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계열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악의적으로 연출된 영포티들의 일상을 들여보면 웃프다. 최신 아이폰으로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들으며 스투시와 슈프림 같은 향수에 젖은 스트리트웨어를 착장하고 당근어플의 지역 소모임을 기웃거리면서 깨어있는 척, 가진 척, 해본 척해보다가 모든 사회 문제를 보수정당의 문제로 귀결시켜 버리며 넘사벽이 되어버린 부동산에 대한 욕구를 거세하고 코인과 주식으로 미래를 설계해보려 했지만 이 조차도 마땅치 않자 최고의 투자는 나에 대한 투자라며 욜로를 외치며 인스타 업로드 거리를 찾는 모습들이 그렇다.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 불혹, 직장에서는 리더급 직책이자 자녀가 있다면 학부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이 중추적 연배가 왜 이런 조리돌림의 상징이 되어 온라인상에서, 혹은 오프라인에서 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우선 지금의 영포티들에게 세대명이 처음 부여 된 것은 이들이 20대이던 20여 년 전 '88만원 세대'라 불린 것이 그 처음일 것이다. 우석훈, 박권일 책 '88만 원 세대 : 대한민국 희망보고서(2007)'라는 책을 통해 명명된 이 세대론은 당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 88만원에 빗되어진 것으로 IMF이후 축소된 정규직으로 청년층의 취업난과 스펙경쟁은 과열되고 학자금 대출등의 압박으로 청년빈곤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책 88만원 세대는 대한민국 최고 스펙의 세대가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최저 임금에 허덕이며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보이는 것은 암울한 미래뿐이었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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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88만원 세대라 불리기 전까지 이들의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산업화 세대 부모 밑에서 뜨거운 교육열로 자라왔으며 초중학교 시절에는 PC를,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휴대폰을, 20대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앞선 세대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세계관을 구축해 왔을 뿐만 아니라 88 올림픽, 2002 월드컵, 한류의 대유행을 직접 체험하면서 성장해 왔다. 이렇게 88만원 세대라 불리기 전의 영포티 들은 적어도 부모세대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더 누릴 것이 많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회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보니 좋은 일자리는 없고 갚을 학자금은 쌓여만 가는 현실의 벽을 만났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을 더 경쟁 속으로 밀어 넣어 윗 세대가 요구하는 스펙을 강화하는 것뿐이었다. 이미 학점에 어학점수, 그리고 각종 자격증과 봉사활동까지 앞선 세대가 근접할 수 도 없는 스펙을 쌓았지만 높아지는 스펙에 대한 요구는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미달들을 잘라내기 위한 스펙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영포티, 당시 사회에 막 진출하려던 20대들에게 그 높은 스펙을 요구하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20여 년 전의 불혹세대,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견고한 세대적 연대를 구성해 왔던 '86세대'였다. 군부독재를 비판하면 이론적 무장과 광장의 시위를 주도하며 운동권의 문화를 구축해 왔으며, 87 체제를 이끌었다는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과 그들의 지도자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연달아 탄생시켰다는 자신감으로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의 중추를 장악했던 그들의 눈에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려 하는 20대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세상 물정 모르고 고이자란 철부지 조카 정도로 보이지 않았을까?


86세대의 삶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한다면 88만원 세대의 삶은 도태되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86세대의 20대 시절은 낭만이 있었다. 국가를 논하고 민주화를 논하고 광장을 혁명의 노래로 뒤덮느라 학사경고가 날아와도 사상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기였기 때문에 대학만 졸업하면 어느 기업이든 문을 박차고 들어가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포티가 된 88만원의 세대의 20대는 그렇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경험한 IMF는 한두 집 건너 한 집씩의 어느 아버지는 실직을, 또 한 두 집 건너 어느 가게는 폐업을 했으며 집집마다 평수를 줄이고 식비를 줄이더라도 마지막까지 자식의 학원비만은 지켜가며 어렵사리 대학에 들여놓았으나 취업을 위해 요구되는 스펙은 천정부지에 갈 수 있는 직장은 바늘구멍과 같은 현실이 낭만은커녕 도태되지 않고 생존하는 것조차 버겁게 되었었다.


당시 불혹의 86세대들은 88만원 세대들에게 학교에서는 스펙을 사회 진입을 위해서는 경험을 요구했다. 그때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의 하소연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경력이 있으면 신입사원으로 지원하겠냐?", "인턴을 지원했는데 경력이 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하냐"이 하소연을 하던 친구들은 그 허들을 넘기 위해 마지막 자존감까지 꺾어가며 경력증명서 한 장을 받기 위해 몇 달간의 무급인턴, 업무보조, 기간제라는 등등의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훗날 한국식 노동착취의 한 형태로 까지 지적된 '열정페이'의 사슬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노력이 아닌 '노오오오력'을 해야 한다며, 지금 돈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며, 아랫세대(88만 원 세대)를 향한 윗세대(86세대)의 가스라이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555376942_24835372176079881_3513055266699134147_n.jpg 2012년 시사인 3월호 표지

이후 88만원 세대에게 붙어온 이름들은 참혹하기만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립을 하지 못한다며 '캥거루 세대'라는 이름이 붙었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 나아가 취업과 주택까지 포기한 5포 세대, 거기서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라 부르다 급기야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한 N포세대라 불렸다. 그런 그들이 이제 40대가 되자 이제는 '영포티'라는 조리돌림에 걸려든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88만원 세대, 캥거루, N포 등의 명칭은 윗 세대로부터 붙여졌다면 영포티라는 이름은 아래세대에 의해 붙였졌다는 정도일 것이다.


되돌아보면 영포티라 불리는 나와 또래 친구들의 세대적 삶은 스스로를 규정해 본 적이 없다. 앞선 세대인 70년대 생들은 경제 호황과 젊은 시절 맞이한 세계화 등으로 자유를 누리며 자신들을 규정할 수 없는 세대, 'X세대'라 명명해 왔지만 그다음을 맞은 우리는 스스로의 세대론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주최적 삶은 자기 철학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철학의 모든 시작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규정에서 시작된다. 스크라테스의 "너 자신의 알라"에서부터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의 명언 "인간은 자기가 만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선언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개인도 세대로 주최로서의 삶을 살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윗 세대와 아랫세대 모두에게서 조리돌림을 당하는 40대 영포티들이 이제 스스로의 세대를 규정하는 고민을 시작했으면 한다. 개인도, 세대도 자기 정체성에 대한 스스로의 규정이 있어야 삶의 주최가 될 수 있고, 세대적 지향점을 설정할 수 있다. 영포티가 된 88만 원 세대의 삶은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 풍요 속 빈곤의 시대를 살아왔다. 국가는 선진국이라는데, 회사는 성장한다는데, 주변은 다 잘 나가는 거 같은데, 나도 중간은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불안하고 허망한 느낌이 우리 세대 전체를 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세대운 시대와 체제를 갈망하며 투쟁했던 86세대는 이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모두 장악한 거대 기득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쟁 중이다. 최근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65세 정년 연장법만 하더라도 아랫세대와의 아무런 공감 없이 스스로의 연명을 위해 밀어붙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대적 불공정의 구조가 명백한 국민연금 개혁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기울이고 있지 않다.


이 직격탄은 10년 후, 20년 후 지금의 영포티들이 맞닥뜨려야 할 실제의 문제들이다. 20대에는 40대였던 86들에게 88만 원 세대라 불리며 열정 페이로 착취당해왔고, 40대인 지금에는 거대 기득권이 되어버린 86들에게 일자리, 부동산 등의 재산증식의 기회마저 빼앗기고 있으며 또다시 20년 후에는 연금의 분배마저 강탈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이와 같은 착취구조 속에서도 영포티 들의 대부분은 86세대의 정치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대 착취가 세대 가스라이팅으로 전이 되는 것인가?)


88만원 세대, 캥거루 세대, N포세대, 영포티 세대와 같이 무능하게 주입된 세대명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세대명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이 조리돌림과 세대 착취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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