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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으로부터 May 18. 2022

이치란 메달

<고민 대신 경험한> 내가 나의 목에 걸어주는

스물아홉의 봄, 일본에 갔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갑작스레 여행을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기모노를 입고 싶다. 

둘째, 빨간색 관람차를 타고 싶다. 

셋째, 츠타야 서점에 가고 싶다.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는 내가 엄청난 길치이자 방향치라는 것인데, 역에서 도보 오분 거리인 강연장을 못 찾아서 지나가던 경찰분들의 도움으로 강연이 끝날 때쯤 도착한 적도 있을 정도다.


  이런 심각성을 잘 아는 지인들은 말이라도 통하는 제주도를 가라, 친구라도 데려가던지, 한혐 때문에 와사비 초밥을 먹게 될 거다, 모두 진지하게 나를 말렸다.


  문장을 좋아하는 나는 분기별로 문장 하나를 정해 부적처럼 쥐고 있는데 그때 내가 쥔 문장은 <고민 대신 경험하기>.






중요한 건 일본에 가고 싶다는 내 마음이고 지금 이 시간은 돌아 오지 않는데. 이런저런 이유들로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면 훗날 얼마나 아쉬울까. 


  여행을 결정하던 날, 여행지에서 쓸 수첩을 펼쳐 맨 앞 장에 이렇게 적었다. 


‘살아서 돌아오기.’


  우습지만 이틀 이상 집 밖에서 자본 적이 없던 내게, ‘공항 가서 처음 해야 하는 일’부터 하나하나 검색해야 했던 내게, 이런 각오 없이는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예쁜 카페나 가볼 만한 몇 군데에 별 표시를 해두기는 했지만 욕심부리지 말고 가는 날은 숙소에 도착하기. 오는 날은 인천 공항에 도착하기. 그것만 해내자는 마음이었다.


  드디어 디데이가 왔고 식은땀 나는 몇 개의 관문을 거쳐 무사히 일본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통카드 발급이었는데, 거기에는 연분홍색 벚꽃 나무와 기모노를 입은 키티가 그려져 있었다. 나의 무사만이 목표였던 여행은, 그때부터 꿈 같은 여행이 되었다.






가보기 전에는 몰랐다. 한국에서는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도 난 안 찍을래. 도망가던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뒷모습도 찍어주세요!”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기모노를 입은 동양인이 신기했던 파란 눈의 외국인들과 브이를 하고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밥을 먹고, 관람차를 타고, 하이볼 한 잔을 시켜두고 몇 시간씩 떠들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떠나기 전날 밤에는  카페에서 아끼는 책을 읽다 창가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음에 올 땐 나도 꼭 책을 만들어서 여기 올려두고 같은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면서.


  꿈 속인 것 같던 3 박 4 일의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아침, 이치란 라멘을 먹으러 갔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 그 따뜻한 한끼가 내게는 메달 같은 거였다. <고민 대신 경험한> 내가 나의 목에 걸어주는. 





"뒷모습도 찍어주세요!" 말했던 작은 용기의 흔적 :)


스릴러에서 로맨스로 첫 해외 여행의 장르를 바꿔주었던 고마운 카드 한 장


밤에는 찍었던 사진들을 눌러보며 떠오르는 감정들을 글로 적었다. 오늘의 기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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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부터 가을까지 태재 작가님이 운영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 [에세이 드라이브]에 참여했습니다.


7개월간 매주 월요일 밤 열한 시까지 제출했던 에세이와, 

모임과 별개로 혼자 써두었던 몇 개의 글을 모으고 엮었습니다. (2021.12 독립출판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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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의 <시간>을 들으면서 썼습니다.




독립출판 에세이 :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한 송이 꽃이 피어날때까지 아직은 씨앗일, 우리의 시작하는 마음들을 온 힘을 다해 응원해주고 싶다.

필요할 땐 내가 가진 물을 나누고, 어떤 날엔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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