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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으로부터 Apr 08. 2022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식물을 돌보는 일이 꼭 사람을 좋아하는 일 같다.

  허브 바질을 키우기 시작했다. 회사 동료가 봄이 왔다는 이유로 팀원들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봄의 시작과 화분 키우기라니, 조금 들뜬 기분으로 포장을 뜯었다. 화분에 흙을 붓고 씨앗을 심으면 끝나는 간단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흙의 양을 잘못 계산해 1cm 밑에 심으라는 씨앗을 3cm 도 넘는 아래로 묻어버렸다. 그때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씨앗이라 힘이 없어서 너무 아래 심으면 안 돼요. 애들이 밖으로 못 나와.”


  씨앗은 뿌려졌고 돌이킬 수 없었으므로 불안한 마음을 안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놓았다. 각자의 주인이 생긴 여섯 개의 화분이 일렬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화분의 색깔 말고는 주인을 구분할 단서가 없다는 게 아쉬워서, 갖고 있던 악어 그림 스티커를 내 화분 앞에 붙여주었다. 화분에 대한 마음이 부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내 손으로 키워보는 첫 식물이었다.






  하루에 한 번 잊지 않고 물을 주었다. 싹이 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는데 일주일이 채 되기 전에 모든 화분에 새싹이 돋았다. 딱 하나, 악어 스티커가 붙은 화분만 빼고. 


  혼자 잠잠한 악어 화분이 가여워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해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화분도 같이 옮겨주기로 했다. 낮 동안만이라도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일을 하다가도 조금의 틈만 생기면 화분이 있는 쪽으로 고개가 기울었다. ‘그렇게 작은 씨앗이었는데 3cm 는 심했지. 흙이 아니라 벽 같겠다. 난 틀렸어. 그냥 새 걸로 다시 사올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이 며칠쯤 지나서였을까. 출근한 나에게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지윤 씨 화분 봤어요?”


악어 화분 위로 연둣빛이 두 개나 돋아 있었다. 오후가 되니 머리를 반만 내민 것 같은 새싹이 또 한 개. 햇빛을 따라 자리를 옮겨주고 물을 주면서도 내 건 언제 자랄까, 자라기는 할까. 조바심을 냈는데.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자라고 있었구나.’ 






  손바닥만 한 화분에 손톱 크기도 안 되는 네 개의 씨앗. 그것들도 싹을 틔우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살면서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흙이 두껍다는 핑계로 져버린 과정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나를 좀 더 기다려줄 걸. 


  새싹을 마주한 날에는 이런 일기를 썼다. 


‘불현듯 알게 되었는데 자꾸 관심이 가고 자주  생각이 난다. 상대는 가만히 있는데 혼자 더웠다 식었다 한다. 식물을 돌보는 일이 꼭 사람을 좋아하는 일 같다.’고.


  마음이 가물었던 날에도 화분에 물을 줄 때면 눈빛은 다정해지고 가슴은 따뜻해졌다. 사람이나 동물과 달리 식물에게 밥을 준다는 건 온전히 물을 주는 행위가 전부여서, 그때 내 감정이 어떻든 그 순간만큼은 그저 좋은 마음만 품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목마르지 않았으면,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는 안부와 애정, 사랑 같은 것들. 


  또 언젠가 조바심이 드는 날이 올 때면 악어 화분에 처음 새싹이 돋아나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자라고 있을 나를 위해, 나는 나를 기다려줄 것이다.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도 애를 태우다 나타나준 두 개의 연둣빛과, 오후가 되니  머리를 반쯤 내민 또 하나의 귀여운 생명체


이제는 이렇게나 무성해졌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면 언제고 나를 달래주는 다정한 장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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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부터 가을까지 태재 작가님이 운영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 [에세이 드라이브]에 참여했습니다.


7개월간 매주 월요일 밤 열한 시까지 제출했던 에세이와, 

모임과 별개로 혼자 써두었던 몇 개의 글을 모으고 엮었습니다. (2021.12 독립출판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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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톤 프로젝트의 <시간>을 들으면서 썼습니다.




독립출판 에세이 :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한 송이 꽃이 피어날때까지 아직은 씨앗일, 우리의 시작하는 마음들을 온 힘을 다해 응원해주고 싶다.

필요할 땐 내가 가진 물을 나누고, 어떤 날엔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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