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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스 May 05. 2023

우리 집에 비건이 산다

비건과 공생하는 방법

하루는 내 스킨케어 제품이 다 떨어졌다. 알레는 자기가 사용하던 제품을 들고 오더니 "이거 어때? 이 스킨케어 제품 꽤 유명해." 하고 나에게 권했다.


"좋은데? 어디서 샀어?"

"다음에 살 때 큰 용량으로 살게, 같이 쓸까?"


그렇게 난 알레랑 같은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하게 되었다. 


또 하루는, "오는 길에 세탁세제랑 섬유유연제 사 왔는데, 향기가 너가 좋아할 향기야. 어때?" 하며 세제 뚜껑을 열어 나에게 가까이 대어주었다.


"좋은데?"
"그럼 다음에도 이거로 살까?"


그렇게 내 옷들에선 항상 그 세제와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 살림살이들(욕실, 주방 청소/위생 용품, 세탁 세제류, 세면/샤워 용품, 스킨케어 제품 등) 모두가 자연스레 비건, 크루얼티-프리(동물실험 하지 않고 생산된) 제품들이 되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러다, 샴푸와 컨디셔너가 다 떨어진 어느 날은, 내가 먼저 알레에게 물었다. "비건, 크루얼티-프리 샴푸나 컨디셔너 아는 거 있어?"


공유하는 걸 좋아하고 복잡한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알레랑 간소한 몇 가지 제품들로 함께 공유하며 사용하는 게 편하고 좋았나 보다.


감사하게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선 쉽게 비건, 크루얼티-프리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서, 물질적인 걸 구매할 때는 나도 비건과 크루얼티-프리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되었다.


처음은 마트에서 길 잃은 아이처럼 제품을 고르질 못해 ‘이 정도로 해야 하나.’ 답답했는데, 지금은 처음과 달리 딱히 찾아보고 알아볼 필요 없이 간단하게 사용했던 제품과 같은 제품을 구입하면 된다. 오히려 구매과정이 쉽고 간편해졌다.


알레와 나의 최애 스킨케어 브랜드 / ⓒ Carmen Bellot


비건, 크루얼티-프리 제품은 생산과정이 윤리적이고 성분이 비건이라, 제품의 질 자체만 보더라도 순하고 올가닉해서 좋았다.


내 구매행동이 동물들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으니, 자연 스래 구매 만족감 또한 높아졌고 내 삶의 행복감도 풍성해졌다. 몰랐던 걸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준 알레에게 고맙다고 마음을 표현했고, 알레도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기쁘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의 공생의 과정이 한층 쉬워졌다.




우리 집 주방은 알레가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어째 저째 자연스레 이미 비건키친이 된 상태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가끔 내가 고기류가 땡기는 날이면, 나는 고기나 생선을 마트에서 사냥해 와 요리를 한 후, 알레가 해준 요리 위에 토핑식으로 볶은 고기를 올려 먹거나 구운 생선 같은걸 반찬식으로 옆에 두고 먹는 편이다. 알레는 고기에 알러지가 있거나 고기가 싫어 안 먹는 게 아니라, ‘생명존중'의 관점으로 비건이 되기로 스스로 결정한거라, 고기 냄새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지 않다.


가끔 비건이 아닌 내가 주방에서 사부작사부작 요리를 할 때, 우연히 알레가 고기냄새(특히 생선 굽는 냄새)를 맡게 되는 날이면,


“냄새 너무 좋다. 맛있겠다!” 하고 나에게 말하기도 한다.



대신 고기 요리는 내 몫이고, 알레가 먼저 사용했던 조리도구들을 내가 2번 타자로 사용한다. 그럼 알레도 나도 같은 조리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설거지 거리가 늘지 않는다.


주방에서 같이 요리하며 살기 위한 우리만의 공생의 룰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함께 다른 요리를 하는 날은 많이 드물다. 내 식성을 꿰뚫고 있는 알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이미 ‘비건화’ 하여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알고, 요리해 주길 즐겨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물개박수로 큰 리액션 해주고 "너무너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당-!" 하고 먹는 거다.


그럼 다음에도 또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 나의 생존 방법이다. (다음화)


비건 미트볼


알레가 만든 비건 미트볼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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