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 된 이유에 대해
내 인생은 소주엔 닭발, 소맥은 곱창막창대창, 맥주는 치킨, 레드와인엔 한우 갈빗살, 화이트와인엔 봉골레, 고량주엔 꿔바로우였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말한다.
"동물들이 안 됐어."
그래, 관점을 바꾸어 바라보면, 생명을 죽이고 먹는 게 어떻게 보면 안 됐다. '생명존중'의 관점에서 이효리도 베지테리언이 되었고, 불교도 살생하지 말라는데. 하지만 내 입에선 끊임없는 '그래도'가 튀어나왔다. 그 '그래도'는 우리 토론에 있어 나의 카드를 내기 전 예고와도 같은 추임새였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라는 걸 직감한 알레는, 쿠키를 구웠다. 우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단거!
"그래도 먹이사슬이라는 게 있잖아. 먹고 먹히는 자연 생태계. 우린 사람이야, 그 먹이 사슬의 가장 상단에 있는! 자연의 섭리지." 내가 말해놓고도, 뭔가 그럴듯하게 맞는 말 한 것 같아 뿌듯해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면, 풀, 메뚜기, 개구리, 그 생물 중 하나가 멸종했다 치면, 그다음 피라미드에 있는 소비자 동물은 영양을 보충할 수 없어 죽게 되잖아. 사람은 그 먹이 사슬의 가장 상단에 있는 거 아니야? 먹고 먹히는 그 관계는 생태계 균형을 위해서 필요하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
미소 지으며 듣고 있던 알레가 말했다. "내가 그 야생의 생태계에 살고 있다면, 나도 생존을 위해 사냥하고 먹고살 거야. 어쩔 수 없으니까. 근데 현대 사회엔 야생에 가서 동물을 사냥하지 않고도 대체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다른 옵션들이 많아. 그리고 사람이 포식자가 되지 않아도 자연 생태계는 무너지지 않아. 오히려 보존으로 인해 더 아름다워지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다른 '그래도'를 들고 나왔다.
"그래도, 동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영양소라는 게 존재하잖아."
"아니, 그 영양소 식물성에서도 다 얻을 수 있어." 알레는 영양소를 공부했다. 그래서 균형 잡힌 식습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채식을 하면, 육식을 통해 섭취되는 부정적인 성분을 섭취 안 한다는 점에서 질병도 예방할 수 있어. 영양소에 대해 잘 알고, 균형 잡힌 식단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을 둔다면 채식이 오히려 건강한 삶을 위한 이득이지. Plant-based는 의료계에서도 추천하는 식단이야."
배운 사람이라 반박불가. "아 그래? 그렇구나."하고 끝내려 했는데, 알레는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랑 영국에서 살면서 너가 전에 가졌던 복부 팽만감 이라던가, 면역성 저하로 인한 질병이라던가, 권태감 같은 건 좀 어땠어?'
맞다. 그런 것들이 없어졌었다. 그게 비건 식단이 주는 큰 이점 중 하나라고 했다. 더군다나 알레랑 꾸준히 수영도하고 헬스도 하고, 주말이면 하이킹도 즐겨하고 있어서, 난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또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불편함이라는 게 발목을 잡을 거야. 사람들이랑 외식을 하거나, 음식 재료를 고른다거나 할 때 하나하나 일일이 재료를 확인할 수는 없잖아. 너무 불편하고 귀찮지." 한국은 비건옵션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비건 제품이더라도 그 흔한 비건마크 조차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한국에서의 비건의 삶을 상상만 해도 너무 큰 도전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영국은 어딜 가나 비건 옵션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심지어 비건 재료만 취급하는 마트, 레스토랑, 카페, 베이커리 또한 많다. 사람들의 인식 또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에 기반되어 있어서 소셜라이징에도 문제 될 게 없다. 더군다나 난, 남자친구가 비건에다 요리를 즐겨하니, 남자친구와 함께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갖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결국엔 '내가 비건이 되지 않는 이유'를 말하라면, 고기의 식감과 맛 때문이었다. 그걸 포기할 수 없다. 너무 맛있어서! 아마 알레가 가지고 있는 '생명존중'에 대한 신념은 고기의 식감과 맛을 포기할 만큼 강해 비건이 되었나 보다. 새삼 알레가 아주 많이 존경스러웠다.
바쁜 현대사회에 살다 보면 보이는 것만 혹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으며 살아가기 쉽다. 난 편리하게 소비하고 먹을 수 있는 고기들이 너무 맛있어서, 별로 그 이면을 찾아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거다. 그러다 마지막 '그래도'가 나왔다.
"그래도, 사람들이 편리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제품으로 생산되는 고기의 공정과정은 인도적이지 않을까?" 인도적인 생명의 공정과정이라니.. 내가 말하고도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싶었지만 그냥 내뱉었다.
"그 공정과정이 처참해. 그 과정을 보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었어. 그 처참한 공정과정 아래 실험 당하고 죽어간 동물을 마트에서 소비하는 건 그 판매자를 지지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비건 커뮤니티는 점점 커지고 그 영향력도 강해지고 있어. 나 또한 고기 소비를 하지 않음으로써 내 신념을 표현하는 거야. 너가 원한다면 그 공정 과정을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줄 수 있는데, 볼래?"
"아니." 난 준비가 안 됐다. 일단 보고 싶은 것만 보기로 했다. 내가 편리하게 소비하고 먹을 수 있는 그 맛있는 고기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 이면의 이야기는 찾아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에 ‘어떻게 비건인 알레를 존중하며 함께하는 시간과 함께 사는 공간을 잘 공유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다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