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나는 알았어, 내 계절도 시작되고 있음을.
올해 여름은 옥수수들에게 좀 가혹했지.
한 달 넘게 이어지던 장마에
수확시기를 놓친 옥수수 들는
모두 말라버렸거든.
그 많은 비를 다 맞으며
옥수수는 여름 내내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렸을지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냥, 다음 여름을 기약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9월 중순이 지나서
아빠는 새로운 옥수수를 가져오셨어.
- 아빠, 올해 옥수수는 여름에 다 먹은 거 아니었어?
- 이건 가장 늦게 심은 옥수수라 가을에 나오는 거야.
엄마는 찜기에 옥수수를 넣으며
아주 맛있을 거라고 기대하셨고.
옥수수는 정말 쫀득쫀득하고 탱탱해서,
올해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어.
옥수수는 알았을까?
자기의 계절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장 늦게 심은 옥수수는 조용히,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어.
빨리 성공하지 않으면 어때,
일찍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으면 그것도 뭐 어때.
늦게 심어진 나는
여전히 크고 있는 중이고,
아직 내 계절은 오지도 않았을 텐데.
조급해하지 말고,
나의 계절을 살아가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늦게 심은 옥수수가 가장 맛있는 것처럼.
조금 울컥해진 마음으로 옥수수 하나를 들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
평소처럼 메일함에 들어갔을 때,
내 이름으로 된 메일 제목 하나를 보게 돼.
별생각 없이 그 메일을 클릭하고,
그리고 내가 읽는 게 무엇인지 알았을 때,
너무 놀라서 심장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았어.
한 출판사 직원의 인사로 시작하는 메일은
내 소설은 공모전에서 떨어졌지만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었어.
5년 동안 꿋꿋이 잡고 있던 첫 아이템.
이제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공모해보고,
이번에도 떨어지면 깔끔하게 포기하자고 다짐했던
마지막 공모전에서 나는 또 탈락을 했고
고향으로 내려가 마음을 접기까지 두 달이 걸렸어.
비로소 이제야 모든 걸 내려놨는데
그 마지막 공모전의 담당자에게 연락이 온 거야.
내가 보고싶다는 거야.
내 소설이 궁금하다는 거야.
어딘가에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런 이야기가
내게도 벌어졌어.
나는 그제야 알았어.
늦게 심어진 내 계절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