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석으로 눈을 돌리면
며칠째 조카가 아프다. 열은 나는데 딱히 별다른 증상이 없다. 장염인가 싶어서 흰죽만 줬더니 맛없어서 신경질을 냈단다. 둘째가 가족 단톡방에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조금 핼쑥해진 사진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의 걱정이 쌓인다. 못 먹어서 어떡하니. 빨리 나아서 맛있는 거 먹자. 할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빨리 나아라. 입맛 없다는데 먹고 싶다는 거 꼭 사줘라…. 나도 한 마디 얹는다. 아프다는데 머리는 더 커진 것 같아. 동생이 머리는 원래 컸다고 답한다. 엄마가 같이 있었으면 머리 크다고 하지 말랬지 하면서 혼냈겠지만, 자꾸 놀리고 싶은걸.
하루 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던 조카의 열병은 계속됐고, 결국 학교를 조퇴하고 병원에 갔다. 이내 학교 교복을 입고 울고 있는 사진이 도착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흐르는 걸 보니 몸은 아프고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는데 병원까지 와서 여간 서럽고 신경질이 난 모양이었다. 동생은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그 아래로 걱정의 말이 쌓인다. 불쌍하네, 아파서 어떡하니, 빨리 낫거라. 힘내렴. 다 낫고 맛있는 거 먹자.
겹겹이 쌓여있는 걱정과 응원 속에서, 이 많은 사진을 보낸 동생에 대해 생각했다. 아파서 밥은 못 먹고 아이스크림을 줬더니 신나 한다며 함박웃음 짓는 사진, 얼굴이 붉어진 채로 버스에 앉아있는 사진, 교복을 입고 얼굴을 찌푸린 사진, 링거를 들고 멀쩡히 서있는 사진까지. 이 사진들을 우리에게 보내던 동생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진을 넘기다 보니 동생의 답답함과 걱정이 느껴졌다. 아이가 아픈데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막막함과 두려움까지. 그제야 동생이 많이 힘들었겠다고 짐작했다. 우리에게 말한다고 현실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생의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관심갖는 가족들이 있음에 위안받고, 응원과 애정의 말들 속에서 이 힘듦이 곧 지나가리란 믿음이 생겼을 테니까.
가족이 많다는 것은 관객이 많다는 의미 같다. 단지 내가 나라는 이유로 애정과 관심을 주는 이들은 가족을 제외하고 매우 드물다. 하지만 가족들은 나의 현재 상태와 상관없이 무대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대하고 관심을 주는 관객들이다. 하나하나 반응하고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응원한다.
불 꺼진 무대에서 급격한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낄 때면 관객석으로 눈을 돌린다. 어둠 속에서 온갖 괴로움을 끌어안고 주저앉은 순간에도 나를 바라봐주는 가족들이 그곳에 있다. 혼자가 아님에 안도한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해내고 싶은 힘이 생긴다.
그 마음이 언제나 그립고 좋아서, 오늘도 우리 가족 단톡방에는 서로의 관객을 향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