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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믿는다는 것

계약한 지 1104일 된 작가는 1105일을 향해가고 계속 그렇게.

by Bo Kim

오늘로 계약한 지 1104일이란다. 카카오가 날 픽미업 한 건 그보다 한 달 전. 그 해 가을에는 론칭할 줄 알았던 작품은 이제 70화까지 썼다. 담당자는 네 번 바뀌었고 그보다 더 많이 갈아엎었다. 선조들은 지혜로워서 이럴 때 쓰는 말을 만들어주셨는데 그게 바로 ’ 일이 많았다 ‘ or ’ 우여곡절이 많았다.‘ 난 천일 넘게 엄청나게 특별한 생존훈련을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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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하루에 하나씩 글을 올려볼까 한다. 100개를 올리고 싶은데, 매일 작업일기 겸 그전에 론칭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준비되면, 내가 준비되면, 하고 뭔가를 쓰기를 미뤘는데 - 완벽한 준비 같은 거 없고 어설픈 시작과 점점 더 나아지는 '성장' 만 있더라고. 그러니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성장기고 모험담이다. 장르는 김보영어덜트. 어설프고 뭔가 이상하다면 당연하다. 시작은 원래 그래. 하지만 내일 더 나아질 거고 언젠가는 깜짝 놀라게 될 거고 그때쯤이면 계속 생각날 거다.

***


첫 이야기는 굳어버린 경추 풀어주기가 좋겠다. 오늘 내 경추를 달래느라 하루를 다 썼으니까. 8일 마감인 투고를 5일부터 준비했다. 100시간 정도 앉아서 4만 자를 썼는데, 마지막 날에 이대로 내면 망한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전에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상태로 내면 폭싹 망할 거라고. 자존심 상하기 싫어서 24시간 남기고 4만 자를 다시 썼다. 12시가 다가오는 초조 불안 이런 건 들어올 틈도 없었고 묵묵히 썼다. 물론 한 달 동안 조금씩 묵묵히 썼다면 제일 좋았겠지만…. 그 이야기는 마감 4일을 앞두고 정리됐다. 그때야 ‘나 나갈 준비됨‘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100시간 동안 제대로 풀어내 주는 것.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거든. 소설가는 30일을 누워서 고민만 하더라도 하루 안에 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루동안 장편소설을 쓴 작가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러니 나도 할 수 있지. 미치지 않기 위해 산책을 세 번 나갔고 일부러 집 밖에서 썼지만 마지막 날엔 책상 의자와 떨어질 수 없었다. 어쨌든 제출했고, 당연히 제출하길 잘했다. 낯설고 새로운 모험담+1.


그렇게 비몽사몽 하게 잠이 들었고 어제 하루는 삭제됐으며 오늘은 아침 3시에 팔이 저려서 깼다. 후폭풍의 시간. 머리가 너무 아프고 팔도 저려서 무서웠는데 너무 졸리고. 진짜 힘든 채로 폼롤러 스트레칭했다. 뇌는 자길 원하고 신경은 풀리길 원하고 몸은 유연해지길 원하고 다들 제멋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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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을 자고 일어나도 두통이 계속됐다. 또다시 스트레칭부터 시작. 처음엔 등만 풀었는데 너무 단단해서 좌절했다. 그러다 하체 스트레칭을 했는데 웬걸. 햄스트링을 쫙 늘리니까 세 번째 갈비뼈까지 찌릿하더라고. 계속 앉아있었으니 하체부터 풀어야 했던 거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할 때마다 몸이 풀렸다. 한 네 시간쯤 스트레칭하고 (아요, 아오이어 반복) 해피 아워로 던킨 가서 도넛 사 먹었다. 도넛을 먹으면서 이렇게 하루를 고생한들 몸이 풀리긴 한다는 건 내가 지난 6개월 동안 두 시간씩 걸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게 아니었으면 병원 갔겠지. 주사 맞고 피 빼고 물리피료받고 통원치료받고 -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매일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작업을 하는 건 마지막 4일을 위해서다. 마지막 30화를 위해 3년 간 훈련해 온 것처럼. 다 쏟아부어도 다시 빨리 회복하고 일상복귀 하기 위해서.


완전히 풀어주기 위해 오랜만에 공원에서 달렸다. 팔을 휘두르고 다리를 벌리고 온몸을 다 쓰니 그제야 제대로 회복했다. 회복은 풀어주는 시간인가 보네. 이제 뇌와 신경과 경추와 근육과 내 마음 모두 사이좋아.


지난 3년간 계약하고 데뷔준비하면서 키운 건 이런 거다. 맷집. 그 순간 박살 나도 다시 하는 거. 망함은 일시적이고 성실하게 메꾸면 된다. 다시 쓰고 다시 풀어주고 다시 뛰고. 매일 쓴다는 건 매일 망하고 매일 성공한다는 의미다. 박살에서 회복까지 그 시간을 더 빨리, 그리고 더 짧게 줄여주는 게 꾸준함이고 성실이다. 내가 매일 해온 게 있고 그걸 믿으면 된다. 몇 십 번의 70화를 쓰더라도 최선의 70화를 보여주면 돼.


이런 이야기를 써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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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일 때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


“너를 믿지 마. 네가 해 온 시간을 믿어.”



(2025.06.02 / instagram.com@wwwrighta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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