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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따라 금붙이 구경

새로운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보물들

by Bo Kim

아침에 공덕에서 친구를 만난 뒤, 금은방에 같이 가자고 해서 종로로 넘어갔다.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을 찾았고, 주인은 "아이스커피 좀 시켜놓을게요. "라고 말했다. 나는 열쇠를 가지고 나가려다가 그 말이 걸려 뒤를 돌아봤다. "저는 커피를 못 마시는데…" 난감한 주인. “.. 그럼요? " 내려간 눈꼬리. "어, 저는 아이스초코요."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국인 성인이라면 커피를 마시겠지, 하는 생각을 늘 아이스초코로 박살 내주는 성인 여성으로서, 내가 그 사람의 고정관념을 깨야하는 순간마다 ‘또 올 것이 왔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 몫으로 놓인 아이스커피를 방치하는 것보다 훨씬 닛다. 내게 준 선물인데 예의 없어. 동방예의지국의 장유유서를 이해하고 호의를 기꺼이 받아주고 싶은 사람으로서, 서로 행복할 수 있도록 용기 내어 말해야 한다. ”저는 아이스초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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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반지 사이즈 늘리는데 커피를 왜 사주지?’ 알고 보니 친구는 작아진 결혼반지를 고치는 게 아니라, 새로 사러 온 거였다. 아 네가 오늘의 돈다발을 건네는 사람이구나. 무료 음료는 웰컴 드링크였고, 이것이 비즈니스 수완이구나. 나도 어느새 반지를 끼고 팔찌를 차는 걸 보니! 게다가 아이스초코도 맛있어서 (배고팠음) 좀 신났다. 친구는 반지에 팔찌에 이것저것 사서 신났고, 주인도 신났고 우리 모두 해피해피.


친구 따라 강남은 물론 종로도 가고 해외도 가고 여기저기 잘 따라다니는데, 순전히 재밌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안 할 일들. 아침 10시에 만나서 낡은 오피스텔레서 사주를 보고, 종로 금은방 거리에 보석을 사러 오는 일들. 이럴 때 따라가서 옆에서 이것저것 같이 해본다. 원래 액세서리가 무겁고 답답해서 아예 안 하는데, 오. 나 나이 들었나 봐. 반지 끼니까 갑자기 자신감이 좀 생기고, 팔찌 끼니까 마음의 안정감이 드는 것 같고. 갑자기 래퍼들이 공감되고. 금붙이는 기세야! 근데 또 이 와중에 취향은 확고해서 처음에 마음에 든 것들만 딱딱 껴보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데뷔하면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주에서 지금은 돈도 벌지 말고 공모전도 하지 말고 일단 데뷔부터 하라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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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돈다발을 인출하러 간 사이 주인한테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녀는 우리가 미혼과 기혼인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았고, 그래서 액세서리도 다른 디자인을 추천했다. “육아하면 괜히 마음이 허해서 보석으로 채워야 할 때가 있어요.”라는 말을 친구가 차에서 똑같이 했다. 덧붙여 나이에 따른 스타일, 50대의 피부 톤과 화려한 보석들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런데 금값이 오르면 돈을 더 잘 버는 거 아니에요?”라는 내 질문에 왜 힘들고(두 개 살 거를 하나 사게 되니까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세공도 다 금으로 먼저 준다) 돈 많은 사람만 돈을 버는 그 구조도 알려주었고, 금값 올랐을 때 보석상에 있던 금을 다 팔면 부자 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는 금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말해주며 (그 기대감 때문에 현재의 부를 포기?) 내 취향에 맞는 팔찌와 반지도 계속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노련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사업가였고, 다음에 나도 여기로 오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데뷔부터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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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은방에서 주문한 음료가 배달 왔을 때, 남자분이 내 거를 내려놓으며 “아이스 핫초코요. “라고 말하고 비로 나갔다. 내기 뒤돌아서 “네?”할 새도 없이. 보통 아이스초코 제조가 핫초코에 얼음을 넣은 거라 틀린 말은 아닌데, 잘 쓰지도 않는 말. 그리고 듣자마자 너무 재밌던 말. 혼자 속으로 웃겼다. 방법론으로 따지면 아이스 핫초코 맞는 말이야. 그럼 맞고말고. 다 맞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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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4 / instagram@wwwrighta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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