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것 자체가 능력이고 재능이니까
몇 달 내내 36화가 걸렸다. 이게 여기 나와도 되나… 이걸 왜 넣었나… 왜 이 얘기를 하는 거지? 나도 이유를 몰랐다. 그렇다고 싹 지우고 다시 쓰는 것도 별로였다. 피디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는 것도 아니었고, 별말 없이 넘어갔으니 그건 전적으로 내 선택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했다. 이게 맞나, 아닌가? 이래도 되나? 여기서 독자들이 이탈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들.
결국 그냥 놔두고 다음으로 갔다. 일단은 쓰는 게 우선이다. 정 아닌 것 같으면 나중에 다 고치면 되니까. 결정하지 못했다고 느꼈지만 이동한 거 자체가 결정이었다. 일단 썼고, 이단으로 묵혀보기로. 삼단은… 신경 쓰일 때마다 돌아가서 계속 의심하기. 맞나? 맞아?
그게 맞다는 건 몇 달이 지나고 74화를 쓰는 날에서야 알았다. 36화에서 내가 ‘지금 이걸 왜 쓰지?’하여도 의문 갖게 만든 부분을 74화에서 주인공이 손바닥에 올려놨으니까. 74화까지는 가 봐야 36화를 그렇게 쓴 이유가 풀리는 거였다.
다 의미가 있고, 자기 역할이 있었는데, 정작 직접 쓴 당사자만 근심걱정에 휩싸였다니. 아이러니지?
한편으로는 너무 당연하다. 난 미래를 모르잖아.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이제부터 써봐야 알고, 다음에 무슨 문장이 오는지는 적고 나서야 안다. 늘 백지를 마주하고, 어떻게는 채워 넣고 나서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깨닫는다. 살아보고 나서야 ‘아 이런 거구나’하는 거랑 똑같다.
언제나 내일 쓸 이야기가 생생하고 그걸 그대로 쓴다? 호러물이 따로 없다. 뭘 써야 하나? 하는 막막함과 두려움은 없겠지만 환상도 없고 기대도 없겠지. 하나도 재미없는 상태. 끔찍하다. 차라리 강도 높은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줄이라도 몰랐던 이야기를 적는데 훨씬 낫다. 그 스트레스로 쌈닭모드로 살아야 한대도 내일은 내일 아는 쪽을 택할래.
***
조금 더 살아봐야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36화에 이걸 왜 썼지?를 알려면 74화까지 가야 했던 것처럼. 의문이 풀릴 때까지 조금 더 써봐야 하는 것처럼, 오늘은 알 수 없는 내 삶의 의미심장함은 조금 더 살다 보면 ‘아 이래서 그때 그랬구나’하고 문득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게 된다면.
살아가는 거 자체가 실력이 된다. 계속 쓰는 거 자체가 실력인 것처럼. 오늘에서 내일로 살아가는 그 생명력 자체가 재능이고 능력이 된다.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치는 자기만 알 테니까. 살아있을 뿐인데 내 인생의 능력자가 되고 전문가가 되는 거다.
아무리 살아도 초조함과 불안함은 계속되겠지. 그런데 그게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특권이다. 엄청난 재능이고 선물이지. 과거의 경험들이 미래의 어느 순간 또 튀어나오는 황홀감도 느끼게 될 거고. 당황했던 순간도 어느 때엔 노련하게 넘기게 될 거고. 그렇게 자기 인생에 전문가가 돼가는 건데. 자기를 뒤흔드는 무수한 감정을 품고 비틀거리면서도 결국 한 발자국씩 떼서 내일로 간다는 게 좀 멋있다.
인간은 참 멋있는 존재 같아. 오늘은 엉망진창이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 내일을 만드는 존대라니!
그 기대감이 조금 더 크다면.
살아있는 거 되게 좋은 거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