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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Feb 27. 2016

필리버스터: 국민은 어떻게 콘텐츠를 소비하는가

마국텔, 마리필  -  소통과 재창조로 온 국민이 함께 만드는 핫이슈

필리버스터
의회 안에서의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기타 필요에 따라 의사진행을 저지하기 위하여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캐나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 출처: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어떤 기록이 대한민국에 세워지고 있다.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오후 7시 5분에 대테러 방지법 직권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100시간을 돌파했다(2016.02.27.PM11:05). 첫 번째 주자였던 김광진 의원은 1964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세운 5시간 19분의 기록을 돌파했고,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의 최장 기록을 세웠으며 방금 전 정청재 의원이 또다시 최장 기록인 11시간 38분의 연설 끝에 18번째 주자인 진선미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팩트 TV(http://onair.facttv.kr/)에서 방영하는 진수미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BGM처럼 틀어놓고 있다. 배경음악으로 국회의원의 연설을 듣는 날이 오다니!


현재 국회 TV에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양질의
한국사, 민주사, 헌법 강의가 진행 중


신기록들은 일상에서도 세워진다. 국회 TV는 채널을 쭉쭉 올리다가 틀던 게 전부였다. 그런데 요 근래처럼, 국회 TV를 마치 지상파 프로그램 시청하듯이 오랜 시간 동안 틀어놓았던 적이 있는가? 국회 TV가 예능 프로그램보다 더 재밌을 수가 있는가? 현재 국회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필리버스터, 이것은 대한민국 민주사, 헌법, 국정원 등에 대한 -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 흥미진진한 강연이고, 여당의 의원들은 각각의 특색을 가진 훌륭한 강연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와 해박한 지식,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왜 대테러 방지법이 위험한지 오목조목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헌법과 관련 조항들을 설명해주며 이미 완벽한 테러 관련 법이 현존한다고 말한다. 현재 대테러 방지법에 있는 독소조항들 빼야 하고, 기존의 법들을 잘 지키면 된다고 이야기해준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강의다. 이러다가 인강 강사들 망하는 거 아니냐는 유머도 돌아다니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원래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다'의 반증


그동안의 주로 뉴스에서 국회의원들이 몸싸움하고 막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던 (나를 포함한) 국민들은,  논리 정연하게 연설을 이어가는 여당 의원들의 모습에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응원을 이어가고 있다. 의원들이 준비한 방대한 자료의 양은 물론, 관련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논리 정연하게 의견을 펼쳐나가는 자세까지 - 국회의원은 원래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는 순간이다. 또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신뢰가 생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실시간 검색어에 고스란히 반영


흥미로운 점은,  5일째 이어지는 무제한 토론에 대한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이다. 우리들의 관심은 실시간으로 검색어에 반영되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의원들의 이름은 근 5일째 네이버, 다음 등의 대형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다음( www.daum.net ) 실시간 검색어 1위는 17번째 주자 정청래 의원, 2위는 현재 발언 중인 진선미 의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의원들의 발언 연시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다. 대표적으로, 신경민 의원이 국정원 5대 문제점 중 발언한 '좌익효수'는 5분도 채 안돼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했다. 정청래 의원과 말다툼을 벌이던 정문헌 의원은 과거 NLL 문건을 유출하는 것을 비난하는 글도 트위터로 올라온다. 현재 의원들이 필리버스터에서 연설하는 발언들은 모두 면책권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경험담,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준다. 관련 사항들이 끊임없이 트위터 상에 올라오고, 실시간으로 검색이 된다. 인지하고는 있었으나, 의심은 많았으나 누구도 시원하게 얘기해주지 않았던 점까지 필리버스터를 통해 의원들이 공식적으로, 속시원하게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실시간으로 필리버스터 관련 콘텐츠를  재창조하는 중


대중은 단순히 필리버스터를 '보고, 듣는' 것에서 나아간다. SNS를 통해 '필리버스터'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소비하며 재창조한다. 의원들의 발언 요약본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를 통해 관심표시를 한다. 또한 유투브나 생중계 채널에 채팅장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한다. MBC 예능 프로그램과 아주 유사한 포맷인 이 생중계와 채팅창 덕분에 '마국텔' , '마리필'이라는 용어가 생겨났기도 한다. 이처럼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필리버스터'라는 콘텐츠를 자신의 생각대로 패러디하고,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다. 요 며칠간 필리버스터 관련 실시간 검색어와 트위터를 자주 보고 있는데(사실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재치 있고 센스 넘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센스에 감탄하고, 또 낄낄거리며 웃기도 한다.


마국텔, 마리 필, 기요미, 힐러, 등등 붙여지는 호칭들


현재 MBC에서 방영 중인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을 패러디하여 국회 TV를 '마이국회텔레비전(마국텔)', 또는 '마이리틀필리버스터(마리필)'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의원들의 특징들을 알기 쉬운 캐릭터로 설명하기도 한다. 김광진 의원은 열혈학생회장, 은수미 의원은 인문학개론, 신경민 의원은 죄읽남(죄스노트), 강기정 의원은 목사님, 김용익 의원은 기요미, 정청래 의원은 잘나가는 스타강사(말하고자 하는 욕망), 진선미 의원은 라디오DJ, 이석현 부의장은 힐러라는 호칭을 얻었다. 이 특징만 봐도 팩트 TV에서 관심분야를 찾아 동영상을 다시 보고 싶어 진다. 그리고 조금만 더 검색을 해보면 김용익 의원이 기요미가 되는 탄생과정도 알 수 있게 된다.


관심의 지표이자 국민과의 실시간 소통

그러나 이러한 유머 코드와 재창조는 절대로 국민들이 국가 사안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대중들이 테러방지법에 대해 얼마나 관심 있는지를 보여주는 절대적인 지표다. 제일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어떤 사건에 대해 무겁게만 다가간다면, 쉽게 질릴 수 있고 거부감을 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상에서 인용되고 재창조되는 필리버스터 관련 콘텐츠는 쉽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현재 연설하는 국회의원들이 국민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기도 하다. 진선미 의원은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메세지를 읽어주며 소통을 하고(덕분에 라디오 DJ같다는 글이 많이 눈에 띈다.), 이 행위가 여당의원에 의해 저지받자 카리스마 있는 발언으로(할 말 있으면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라. 당신은 안 하지만, 나는 하고있다.)꿋꿋하게 자신의 주도권을 이어갔다. 서기호 의원이 인용한 책 '리틀 브라더'의 작가 코리 닥터로우는 일평균 800만 명 넘게 방문하는 (뉴욕타임스보다도 영향력이 더 큰) 자신의 블로그에 대테러 방지법을 둘러싸고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필리버스터 관련 글을 업로드했다(번역글:http://ppss.kr/archives/74858). 콘텐츠의 영향력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례다(어쩌면 조만간 '리틀 브라더'는 베스트셀러가 될 지도.)


결과를 뛰어넘을 의미 있는 과정


필리버스터는 현재 지속적인 탄력을 받고 있다. 시작할 때 어떤 결과를 생각했든 그 이상의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라도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현재 필리버스타 진행되는 목적과 테러 방지법, 이와 관련된 사항들을 쉽게 알아낼 수 있게 됐다. 정보가 많아졌고,  재창조된 콘텐츠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캐릭터와 특징을 갖게 된 의원들은 다가오는 총선은 물론 앞으로의 정치 인생에도 어떤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다(그것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법안이  통과될지 안 될지를 뛰어넘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알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현재 발언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목표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에, 같이 응원해본다.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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