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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Mar 31. 2016

첫 문장을 쓰기까지의 몸부림

어떤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다 비워내고 하나만 남긴다. 

나는 영화든 소설이든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공간을 만들고 구상을 짜고 캐릭터를 생성하고, 그들이 살아가게 놔두고. 그래서 영상이든 이야기든 하나의 작품을 기획하고 만든다는 건 인간으로서 신의 기분을 간접 체험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정말! 내가 만든 세계에 초대하고, 초대받은 이들이 완전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가. 문 열고 들어온 세상이 허구지만, 스스로 거짓임을 깨닫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치밀하고 집요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집고 나갈 틈 없이 치밀하게 설정하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하고, 집요하게 붙어있어야 하고. 집요한 영화를 좋아하고 집요한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게 다 거짓임을 들통나지 않기 위해서다. 비록 일상 속 내 모습에선 치밀과 계획과 집요함을 찾아볼 수 없을지라도, 작업을 할 때는 이렇다(또는 이러려고 한다.). 철학이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소설은 첫 문장이 80%가 아닐까 싶다. 

첫 문장을 쓴다는 것은 결론도 나왔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설정이 마무리됐고, 캐릭터들이 이야기 속에서 뛰어 놀기 위해서 출생만을 기다린다는 의미기도 하고. 결국 모든 시뮬레이션이 끝나고 나서야 첫 문장을 쓸 수 있다. 첫 문장만 쓰면, 그다음부터는 정말 쭉쭉 써 내려가는 거다.  그 후로는 뭔가 몸은 난데, 정신적인 모든 것은 소설을 쓰는 그 행위에만 집중해있어서 뭔가 또 나 같지 않기도 하다. 그때가 되면, 그 세계 안에서 사는 게 재밌기도 하다.  물론 그냥 써 내려가는 것 또한 쉽지 않지만, 첫 문장 쓰기보다는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습작 소설의 첫 문장을 쓰려고 시도한지 짧게는 4일, 길게는 10일이 지나고 있다. 나는 지금 시작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진짜 몸을 가만히 못 놔두고 있다. 어제는 아침에는 새로 산 소설을 읽고, 오후 내내 책상 앞에서 노트를 바꿔가며 쉴 새 없이 메모하다가(다시 볼 수는 없는 글씨), 지금 구상하는 장편 소재랑 설정이 너무 재밌어서 (내가 만드는 건데도) 좋다고 낄낄거리면서 신나서 구상 짜다가, 캐릭터들의 이름을 짓고 함께 미래를 고민하다가(이럴 땐 정말 내가 신 같아서 신나)… 밤에는 책상 아래 기어들어가서 웅크리고 누워있었고(진도가 안 나가 진도가...), 새벽에는 다시 신나서 노트에 뭘 또 엄청 적었다.      


그러다 오늘은 아침부터 머릿속은 엉켜있고 문장은 안 나와서 (이러면 기분이 괜히 안 좋아. 미세먼지가 많아서 그런가....) 노래 한 곡만 한 5시간 동안 반복 재생해서 해놓았었다. 그러다 마침내 벽에 붙여놓은 전지 앞에서 매직으로 캐릭터들을 끼적거리긴 했는데, 이내 느낌이 별로라서 관뒀다. 그러다 다시 책상에 돌아와서 포스트잇에 매직으로 끼적이다가, 그것마저 관뒀다. 방에 불을 끄고 정신을 집중해도 생각 정리가 끝나지가 않았다. 결국 밤 10시에 집에서 나왔다. 비비크림도 바르기 귀찮아서 마스크를 집어 썼다. 딱 지금, 첫 문장 쓰기 직전이 가장 괴로운 시간 같다. 어디론가 흘러가는 지금 시점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분명 가고 있는데, 언제 가려나, 하는? 오늘? 오늘 아냐? 내일? 여기 아냐? 이거 아냐? 하는 의심의 눈초리.....(뭔 소린지.) 모든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설정에 의문을 품고,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엉켜서 첫 문장이 좀체 손끝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게 분명 어떤 과정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1월부터 소설 습작을 시작했으니, 두 달 치의 경험이 쌓였다. 경험상 이렇게 몸부림치기를 반복하고 정말, 정말 너무 지칠 때쯤이면, 겨우 첫 문장을 쓸 수 있게 된다. 두 편의 습작들이 그랬다. 그게 가만있으면 절대 안 오는 거라서, 어떻게든 몸부림치고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행위들이 이제 쓰려고 하는 이야기와 관련된 것만 놔두고, 그 외에 것들을 다 비워내는 과정 같다.


인생은 비움과 채움의 연속이라는데, 나의 작업 태도도 그렇다. 근 3달간 약 2주 단위로 꽤 극단적인 생활패턴이 반복되는 이유기도 하다.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집중해서 다 비워버리고, 그 후엔 열심히 쏘다니면서 채우고. 경험을 문자로 비워내고, 사람을 만나면서 채우고. 그렇게 내가 비워지고 채워지고를 반복하게 된다.    

  

글을 쓸 때는 신기하게도 정말 이것만 한다. 정말이지 이게 좋다. 집에서 거의 나가지 않고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을 보낸다. 진짜 내가 만드는 세계 안에서만 호흡한다. 같이 글 쓰는 친구 외에는 사람들도 안 만난다. 호흡이 끊기지 않기 위함인데, 한 번 중단하면 그 순간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 나도 힘을 잃고 세계도 무너지게 되는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한 사람이 써야 한다. 


마무리를 지으면 그때부터는 미친 듯이 쏘다니는데, 이땐 정말 경계가 없다. 지하철로 두 시간이 걸려도 나가고, 밤 11시에도 나가고, 하루에 3탕 네탕도 약속에 간다. 경계도 없고 한계도 없이 진짜 표류한다. 그 범위는 주로 서울권 강원권 경기권이고 당연히 국내 어디로든 확장된다. 쏘다니는 기간은 글을 쓴 기간의 반이다. 2주 동안 안 나왔으면 일주일, 한 달이 걸렸으면 2주. 지난번 단편은 10일이 걸렸다. 이번에도 급 전라도에 다녀오고, 고향 친구들도 만나서 쏘고(표류 시에는 돈 개념도 같이 없어진다.) 병도 나고 그랬다. 이렇게 또 비워진 곳을 채우고,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괴로운 시간은 지났다. 오늘 안에 한 줄이라도 쓸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첫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요 며칠 간 소설 빼고 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일기며, 기록이며, 블로그며 모든 종류의 글을 쓰고 있다. 써야 하는, 그리고 무지 쓰고 싶은 이번 소설 빼고 다 쓰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첫 문장을 쓰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 몸 안에 있는 잡다한 생각들을 다 끄집어내는 그런? 이렇게 많은 글들을, 끊임없이 쓰는 건 소설과 관련된 것 빼고는 다 끄집어내려는 행위다. 블로그 글이 많이 올라온다는 건 새로운 소설 쓰기가 가까워졌다는 신호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올라오면 소설을 쓰고 있는 거고.  

     

그렇다고 소설 쓰는 거 자체가 괴롭진 않다. 하기 싫은 건 못하고 사는 타입이기도 하고, 인생 모토 자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꽤나 괜찮다.'기 때문에, 나는 현재 내가 매달리는 이 상황을 많이 애정 한다. 게다가 나의 작가 데뷔를 기원하는 이 순간에, 상금으로 1억 만들겠다고 막 떵떵거리는 이 시기에, 아 맞다, 어제는 작년에 일했던 축제에서 다시 일해 달라는 문의도 거절했는데, 내가 이 작업을 고통으로 치부할 리 없다. 다만, 나는 빨리 만나고 싶은데 안 나와주니까 조금, 아니 많이 안달 날뿐이다. 아, 빨리 보고 싶은데, 내가 쓴 글! 앞으로 쭈-욱 나를 먹여 살릴 나의 작품(들)!   


이런 글을 쓰는 거 보니, 괴로움이고 뭐고 다 끝났구나. 약간 우울해질 뻔했는데, 갑자기 또 내가 쓸 글을 보고 싶어서 좀 조급해졌다. 설레라. 나는 지금 이렇게 비워내고 있다. 사념이든 배설이든 다 비워내고 중요한 것 하나만 남기면 된다. 오늘이 가기 전에 첫 문장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 바로! 내가 만든 세계로 들어간다. 4월 고고공!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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